고향에서 오랜만에 만난 여인에게
많이 보고 싶었다 하니
알롱스럽단다
약간의 부끄러움과
약간의 의심이 담긴 말
아니라 하기도 뭣하고
맞다 하기도 애매한
서울로 흘러가는 조양강이
슬쩍 산굽이를 돌아 내빼는 걸음걸이 같은
해 질 녘 시장에서
혼자 막걸리 마시다가
소나기 후두둑 얻어맞고
정신 차려 보니
알 만한 사람들은 사라지고
나 홀로 알롱스럽더군
세상천지가 알롱스럽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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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실린 시집의 해설을 보면, '알롱스럽다'는 정선 말로 '겉만 그럴듯하고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 정도의 의미라고 한다. 듣는 입장에선 아마도 알롱스럽게 들렸을 것이다. 어린 시절 깨복쟁이 친구였는지 어떤 사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성 간인데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상대방이 대뜸 "많이 보고 싶었다"라는 말부터 하니 말이다. 그런데 시인이 저 마지막에 두 번 적은 '알롱스럽다'에는 위에 옮겨 놓은 뜻풀이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엇들이 잔뜩 스며 있다. 그 말에는 한편으로는 괜한 말을 했다는 자책이 숨겨져 있기도 하고, 또 그런 만큼 한편으로는 새록새록 돋아 오르는 옛 기억들이 묻혀 있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심히 흘러가 버린 시간들이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매정하기만 한 지금 이 "세상천지"가 야속하다는 마음이 옹그려 있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물론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는 그 말이 알롱스럽게만 들리게 된 사정이 참 겸연쩍고 속상하다는 맥락도 한편에 있겠고. 어떤 말은 사전에 적혀 있거나 일상생활에서 쓰는 범위를 넘어 그 말 자체로, 통째로 엄습할 때가 있다. "만지고 싶은 말", 그것이 바로 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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