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빗소리 곁에
애인을 두고 또
그 곁에 나를 두었다
2
빗소리 저편에
애인이 어둡고
새삼새삼 빗소리 피어오르고
3
빗소리 곁에
나는 누워서
빗소리 위에다 발을 올리고
베개도 자꾸만 고쳐서 메고
4
빗소리 바깥에
빗소리를 두르고
나는 누웠고
빗소리 안에다 우리 둘은
숨결을 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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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애틋한 시다. 한 행 한 행 읽다 보면 어깨 위로 토닥토닥 비가 내리는 듯하다. 그런데 이 시는 네 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시인마다 다르겠지만, 1, 2, 3, 4... 이렇게 시 본문에다 번호를 매기는 경우는 대개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이 시는, 내 생각에는 시인이 각각을 영화의 스틸 컷처럼 제시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첫 번째 장면은 빗소리와 애인과 내가 서로 곁을 두고 있는 장면인데, 이들 사이의 거리라든지 위치는 불분명하다. 그런데 두 번째 장면을 들여다보면 "빗소리 저편"에 "애인이 어둡고"라고 적혀 있다. 즉 애인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빗소리 저 너머에 있는 것이다. "새삼새삼 빗소리 피어오르고" 꼭 그렇게 애인이 자꾸 생각나고 말이다. 세 번째 장면은 빗소리 이편에 누워 애인을 생각하는 내 마음의 분주함을 적고 있다. "빗소리 위에다 발을 올리고" "베개도 자꾸만 고쳐서 메고". 그리고 혼자 가만히 누워 애인을 생각하는 네 번째 장면이 이어진다. 그 사연이야 모르겠지만 "새삼새삼"이라고 적어 두었으니 아마도 오래전에 헤어진 애인을 문득 떠올린 듯한데, 그래서 지금은 비록 만날 수는 없지만 빗소리 속에서 "빗소리를 두르고" 옛 애인을 새삼스럽게 그리고 다시 새삼스럽게 생각만 하고 있는 듯한데, 그 마음, 읽으면 읽을수록 새록새록 안타깝고 알뜰하고 지극하다. 장석남 시인의 시는 대부분 고요하지만 읽고 나면 오래 사무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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