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부친 최태민부터 대 이은 인연
朴대통령 일거수일투족 관여…책임서 자유롭지 않을 듯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국회에서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이 본격적인 법리대응에 나서면서 국정농단을 야기한 최순실씨와의 40년 인연도 막을 내릴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측근인 최씨가 저지른 일이라는 입장이어서 헌법재판소 심리 과정에서 최씨와 분명히 선을 그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최씨의 손길이 미쳤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재판과정이 힘겨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의 인연은 그의 아버지인 최태민 때부터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15경축식장에서 간첩 문세광의 총탄을 맞고 서거한 직후부터 알고 지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찬바람이 불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평소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컸던 박 대통령이 충격으로 목사신분이었다고 주장하는 최태민에게 의존했다는 것이다.
그는 1970년대 초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교리를 합쳤다는 '영세교' 교주로 행세하면서 당시 영애였던 박 대통령에게 접근했다. 1975년 3월부터 편지를 통해 "꿈에 돌아가신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가 국모감이니 잘 도와주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이후 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구국선교단, 대한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총재를 지냈다. 박 대통령은 이들 단체의 명예총재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호가호위하며 재벌들로부터 돈을 챙기는 등 권력형 비리와 이권에 개입하는 비리를 저질러 당시 중앙정보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의 딸인 최순실이 미르와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재벌들을 비틀어 갹출하게 했다는 점에서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비판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잠시 사라졌던 최태민은 1988년 박 대통령이 고 박정희 육영수 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키자 고문자격으로 나타났다.
이후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는 육영재단을 배후에서 좌지우지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는 1990년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박지만씨와의 분쟁으로 번졌다. 급기야 근령씨와 지만씨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 "최 목사를 언니로부터 떼내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후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그만두면서 최태민이 전횡을 저질렀다는 소문에 대해 "누구로부터 조종받는다는 말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며 "사업을 도와준 것 외에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고 해명해 확실한 믿음을 보였다.
박 대통령과 최씨가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것은 최태민이 사망한 1994년 이후다. 2014년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으로 구속됐던 박관천 전 경정은 최순실에 대해 '박 대통령의 오장육부'라고 표현할 정도로 박 대통령과 최씨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박 대통령과 최씨가 공개석상에서 함께 모습을 드러낸 시점은 1979년 새마음제전이었다. 박 대통령은 새마음봉사단 총재 자격으로, 최씨는 전국새마음대학생 총연합회장으로 참석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당시 예고도 없이 불쑥 행사장을 찾았다고 한다.
최씨는 박 대통령이 한동안 어려움을 겪은 시절에도 곁을 지킨 인연으로 유명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25일 대국민사과에서 최씨에 대해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줬다"며 "오랜 인연 때문에 도움을 받게됐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인연은 대를 이어 박 대통령의 권력에 호가호위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박 대통령에게 이런 끝없는 믿음은 부메랑이 됐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스캔들이 터진 후 참모들의 보고를 받고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에서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줬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것이 사실"이라며 "돌이켜보니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고 고개를 숙인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그 인연 때문에 박 대통령도 헌재 뿐 아니라 특검수사까지 받아야 하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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