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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이를 잊지마오…소녀상 밑에 묻어달라던 94세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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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위안부 피해자, 서러운 눈을 감다, 고동 잡다 끌려간 16세의 '악마의 시간'…이제 생존자 39명뿐


박숙이를 잊지마오…소녀상 밑에 묻어달라던 94세 소녀 90 나이를 넘기고 나서야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박숙이 할머니는 자녀들을 위해 고백을 미룰 수 밖에 없었다고 생전 토로한 바 있다. 인터뷰 당시 박숙이 할머니 모습, 사진 = 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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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이제까지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서 군과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2007년 각의 결정했다” - 2016년 1월 19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 중 아베 신조 총리 발언


“고동 잡을라고 바다에 갔다가 왜놈들한테 잽혀갔거든? 두 놈이 덮어놓고 잡아끌고 올라갔다 아이가” - 2014년 7월 27일 박숙이 할머니 아시아경제 인터뷰 중

존재 자체로 증거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의 기록을 끊임없이 은폐하고, 증명할 수 없다는 핑계로 일의 주체와 목적성을 교묘히 바꿔 거짓을 사실인 양 호도하는 자들에 맞서 육체와 정신을 근간으로, 그 오롯한 존재만으로 진실을 증명하는 사람들. 238명 중 40명만 남았던 것이 어제 한 분의 죽음으로 39명이 된 ‘최후의 증인’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박숙이 할머니가 어제(6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94세.


손재주가 좋아 나물도 곧잘, 조개도 담뿍 캐던 열여섯 소녀는 사촌 언니와 함께 바닷가에 고동 잡으러 나섰다 그길로 칼로 위협하는 일본인 남성들에게 납치됐다. 눈 떠보니 열 명 남짓 또래 소녀들과 배에 실려 일본 나고야로, 거기서 일본식 화장을 하고 일본 옷을 입은 뒤 배에 올라 만주로 보내졌고 텐트를 개조한 막사로 내던져진 뒤 박숙이가 아니라 히로꼬, 준꼬라 불리며 예고 없이 들이닥친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 순결을 잃었고, 이름이 지워진 채 보낸 7년의 시간은 일본의 패망으로 간신히 끝나는가 싶었지만, 돈도 없을뿐더러 글을 몰랐던 탓에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별안간 닥쳐온 검은 차의 사내들로부터 납치 된 지 꼬박 11년 만인 1948년, 박숙이 할머니는 비로소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박숙이를 잊지마오…소녀상 밑에 묻어달라던 94세 소녀 남해 숙이공원을 방문한 박숙이 할머니, 사진 = 남해군청


7년의 시간이 헤집어 놓은 소녀의 일생


박숙이 할머니의 고향은 남해였지만 글을 모르는 그녀가 남해를 설명할 길이 만무했다. 부산역에 도착한 소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주저앉아 있었고, 그런 그녀를 지켜본 한 할머니의 주선으로 “갈 데 없으면 식모 살랑가?” 하는 말에 3년간 식모살이를 하며 기억을 더듬어나갔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화방사’에 기도하러 간다 했던 말을 생각해낸 그녀는 수소문 끝에 화방사가 있는 남해가 자신의 고향이란 것을 알고 곧장 달려갔으나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하나뿐인 오라버니는 전라도로 갔다 하고, 친척들은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해 제사를 지내고 있던 차, 그동안 어디서 무얼 했느냐는 친척들의 질문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천애 고아가 된 그녀에게 여자로서 가정을 꾸리고 생활하는 것은 소망, 아니 사치였다.


“위안부 6년 있다 나왔제. 나와서 식모 3년 살았제. 고향에 온께로 외롭다 아이가. 근데도 위안부 출생이 돼서 시집은 무슨 가봤자 아도 못 낳아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기라.”


박숙이를 잊지마오…소녀상 밑에 묻어달라던 94세 소녀 "다 끝났데이." 열 손가락을 비닐로 꽁꽁 싸맨 박숙이 할머니가 두 손을 들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 = 백소아 기자


가슴으로 낳은 삼남매


아내와 엄마의 삶을 포기한 그녀에게 이웃의 할아버지가 찾아와 ‘아이 엄마가 도망갔다’며 갓난아기를 그녀에게 맡기고는 한 달 만에 숨을 거두자 그녀는 이를 인연으로 여기고 양딸로 삼았다. 이후 한 처녀가 그녀에게 사내아이를 맡긴 뒤 일주일 만에 사라져 이 아이 역시 거두어 키우던 중 6.25 전쟁이 발발, 피난길에 오른 그녀는 대구의 한 고아원에서 순경으로부터 ‘아이를 제발 업고 가달라’는 부탁을 받고 또 여자아이를 안아 들었고, 그렇게 가슴으로 낳은 삼남매를 키우며 엄마의 삶을 살게 된 박숙이 할머니는 혹여 아이들을 굶길까 생활 전선에 진력을 다했다. 삼베를 짜고, 어깨너머로 한약방에서 배운 기술로 부항을 뜨고 침을 놓으며 기른 아이들은 남부럽지 않게 자라 반듯하게 출가해 가정을 이뤘고, 손주들까지 모두 장성해 남해를 떠나고 나서야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밝힐 결심을 세웠다.



엄마여서 미안해


박숙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 신고 기사를 처음 봤을 때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망설였던 이유로 아이들을 생각해 말할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아이들을 키워놓고 신고를 해야지 만약 (아이들이 자라기 전에) 신고를 하면 아이가 학교 가서 친구들에게 너희 엄마 위안부 출신이라고 (놀림당하고) 그러면 애들이 기가 죽는다”


같은 민족, 고향 사람들의 시선이 더 차갑고, 자의가 아닌 강제로 끌려갔던 상황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일본군과 놀다 온 더러운 여자들’이란 오해와 편견을 지고 살아야 함을 할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홀몸이었다면 먼저 나서 얘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건강히 자라 학교생활을 하는 자식들에게 누가 될 순 없었다. 그녀는 손주들까지 장성하고 난 2012년 피해자 등록을 했다.


박숙이를 잊지마오…소녀상 밑에 묻어달라던 94세 소녀 7일 서울 종로구 평화로에서 열린 제126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故박숙이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사진 = 백소아 기자


“마음대로 몬 일어나서 걸음도 옳케 몬 걷고”

태평양 전쟁 참전 당시 위생병으로 복무했던 마쓰모토 마사요시 씨는 2013년 자신이 목격한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위안부 동원 행위를 증언한 바 있다. 복무 당시 그는 자신의 임무가 일본군 장교와 병사들에게 콘돔을 나눠주는 한편 위안부들이 성병에 걸렸는지 검사하는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박숙이 할머니는 좁은 위안소 방에 누워있으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오라버니 생각이 간절해졌다고 했다. “기약 없이 떠나왔으니 울 어매는 나를 얼마나 찾았을 거여. 화방사서 빌고 또 빌고 있을 어매 생각을 하면 눈물이 쏟아지는 기라.”


위안소 생활 당시 반복된 구타와 겁간으로 말년에 거동이 불편했던 그녀는 유모차와 지팡이 없이는 걷는 것조차 힘에 부친 상황에도 위안부 피해자 명예 회복 활동에 나섰다.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누워있으면서도 인터뷰와 학생들 교육에 참여하는가 하면 남해군의 고학생들을 돕기 위해 매년 향토장학금을 출연했다. 생전 박 할머니는 “일본에 빳빳하게 고개 들고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으며,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했으나 끝내 사죄의 말을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지난해 8월 남해군이 할머니의 이름을 따 조성한 숙이공원의 소녀상, “그 밑에 묻어달라”가 할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는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이 배제된 채 졸속으로 처리된 합의안에 의거, 일본이 내놓은 거출금을 정부가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할머니 23명에게 현금으로 지급한 사실이 알려지자 분노한 시민들이 나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피해 할머니 12명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박숙이 할머니의 별세로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39명이 됐다. 존재와 증언이 부정당하고, 시간을 허비한 사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기억은 역사가 되기도 전에 금전 보상으로 얼룩져가고, 한 사람의 죽음으로 사라진 증언은 비극의 정지로 내려앉았다.


상처가 많아 너무도 향기로웠던 한 여인의 삶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인생을 송두리째 유린당하고도 역사와 현실 앞에 섰던 그 용기에 너무도 많은 짐을 지우고, 너무도 많은 빚을 졌기 때문이리라.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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