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나는 음식의 언어를 찾아서…⑦라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뜨끈한 국물 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간편하게 끓여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국물 음식은 라면이다. 공을 들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고 밥, 김치 등과도 잘 어울린다. 가난한 자취생의 저렴한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하고 늦은 밤 소주 안주로도 제격이다.
라면은 일본에서 들어왔다. 그런데 라면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중국으로 가게 된다. 일본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이 만들어 먹던 '납면(拉麵)'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칼을 쓰지 않고 손으로 면발을 늘려 뽑은 국수라는 의미다. 이와 반대되는 칼로 잘라 만드는 면은 절면이다. 중국 간쑤성의 란저우에서는 납면에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하게 끓여 먹었다고 한다. 이 납면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라멘이었고 라멘이 우리나라와 들어와 라면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우리가 먹는 라면은 일본에서 개발된 인스턴트 라면에서 시작됐다. 납면에서 이름을 빌려왔지만 면을 만드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1958년 일본 닛신식품의 안도 모모후쿠가 선보인 치킨라면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데 그는 면을 튀겼다. 자신의 집 마당에 실험실을 만들고 라면을 개발했는데 부인이 튀김을 만드는 것을 보고 '순간 유열건조법'을 적용했다고 한다.
이 인스턴트 라면은 5년 뒤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이 최초의 우리나라 라면이다. 포장에는 '라면'이라고 한글로 표기돼 있었고 'INSTANT RAMEN'이라는 영문 표기도 있었다. 국민들이 싼 값에 식사를 해 결할 수 있도록 100g 라면 한 봉지는 10원이었다. 당시 짜장면은 30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밥이 중심인 식사 문화 탓에 생소한 라면은 외면 받았다. 라면은 처음에는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지만 정부의 밀가루 소비 권장과 적극적인 시식행사 등이 맞물려 기호식품으로 정착하게 됐다.
라면이라는 말은 면을 만드는 방법에서 나왔지만 실제 주연은 국물이라는 의견도 많다. 삼양라면 포장에는 닭 그림이 들어가 닭으로 육수를 우렸다는 점을 내세웠다. 지금은 소고기 육수를 강조하기도 하고 하얀 국물의 라면부터 짬뽕라면, 찌개라면까지 다양한 국물 라면이 소비되고 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미각의 제국'에 "인스턴트 라면의 맛은 면보다는 국물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인스턴트 라면의 발명이 면을 튀겨 건조하는 기술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지만, 소비자의 입맛을 최종적으로 속이는 일은 소량의 분말로 진한 국물 맛을 내는 기술에 달려 있다"고 썼다.
하지만 우리나라 라면의 맛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끓이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단연 세계 1위로 74개에 달 한다고 한다. 어느새 라면은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식품이 된 것이다. 라면과 관련된 저마다 추억이 있고 끓이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아마도 라면 맛은 전국 인구 수 만큼 많을 것으로 보인다.
라면에 넣어 함께 끓이는 짝꿍들은 여럿 있다. 계란을 빼놓을 수 없겠고 파는 마지막에 송송 썰어 넣어야 한다. 스팸이나 참치, 꽁치 등의 통조림을 넣으면 맛이 보다 풍성해 진다. 김치는 라면과 천생연분이라 곁들여도 좋고 넣고 함께 끓여도 좋다. 만두나 떡을 넣으면 더 든든한 식사가 완성된다. 오징어, 문어, 조 개, 꽃게, 새우 등 해산물을 넣어 끓이면 짬뽕이 부럽지 않다. 또 슬라이스 치즈를 한 장 넣으면 고소한 맛이 배가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