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법 적용된 지난해 2월 이후 행위만"..조현아 2014년 말 사퇴해 제재 불가능
-'사익 편취' 딱지 붙일 수 있는 기간 적어 과징금도 총 14억3000만원 그쳐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검찰 고발 등 제재 조치를 내렸다. 조 부사장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고발 여부도 관심을 모았으나, 조 전 부사장이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규정 시행 전 '땅콩 회항' 사건을 벌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공정위는 27일 "대한항공이 계열사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와의 내부 거래를 통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자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총수 일가 사익 편취) 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하고 과징금 총 14억3000만원을 부과하는 한편 대한항공 법인과 조원태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23일 전원회의에서 이같이 의결했다.
앞서 공정위 사무처는 지난 6월 대한항공 조원태 부사장·조현아 전 부사장 남매가 조양호 회장 자녀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회사인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심사보고서에는 과징금 부과 처분과 함께 조원태 ·현아 남매를 검찰에 고발하는 안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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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실제 제재 조치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 고발을 제외한 이유에 대해 "조 전 부사장 부분의 경우 애초부터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규정에 의거해 고발안을 상정한 것은 아니었다"며 "사무처는 기존의 부당 지원 금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으나, 결국 전원회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입법 과제였던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규정 신설은 2014년 2월14일 이뤄졌다. 자산 5조원 이상인 대기업의 총수 일가가 지분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을 가진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줄 경우 총수 일가까지 사법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내부 거래액이 연간 200억원 또는 연 매출액의 12% 이상인 회사가 규제 대상이다. 다만 이전부터 계속돼온 거래에 대해서는 2015년 2월15일부터 해당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정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미 2014년 말 '땅콩 회항' 사건 직후 해당 직책에서 사임해 책임을 묻기 힘들다고 공정위는 최종 판단했다.
개정법 적용 기간이 워낙 짧아 일감 몰아주기로 부당하게 얻은 이익 산정도 싸이버스카이 1억3000만원, 유니컨버스 7억6500만원 수준에 그쳤다. 공정위 관계자는 "행위 전체 기간으로 넓혀서 본다면 더 많은 금액이 산정될 것"이라며 "법 시행령 과징금 고시 기준에 따라 과징금도 부당 이익의 80% 정도로 매길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과징금은 대한항공에 7억1500만원, 싸이버스카이에 1억300만원, 유니컨버스에 6억1200만원 각각 부과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2009년 4월부터 자사가 노력해 창출한 인터넷 광고 수익을 싸이버스카이에 몰아주고 있다. 인터넷 광고 수익은 '싸이버스카이숍' 웹사이트 화면상 기내 면세품 이미지를 다른 제품보다 눈에 잘 띄게 배치해 주는 대가로 받는 돈이다. 광고 기획, 영업 등 관련 업무 대부분을 대한항공이 수행함에도 이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자회사 싸이버스카이가 독차지해왔다.
싸이버스카이의 경우 조 회장 자녀 3명이 주식 100%를 보유(조원태·현아·현민 각각 33.3%씩)했다가 지난해 11월9일 대한항공에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이에 따라 조원태 부사장의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위반 기간은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로 한정됐다.
대한항공은 또 계약상 지급받기로 한 통신판매수수료를 이유 없이 면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싸이버스카이와 조원태 ·현아 남매가 부당 이익을 얻도록 도왔다. 싸이버스카이를 통해 판촉물을 구매해 오던 중 2013년 5월부터 합리적 이유 없이 싸이버스카이의 판촉물 거래 마진율을 3배 가까이 올려 주기도 했다.
또다른 자회사 유니컨버스에 대한 특혜도 이어졌다. 대한항공은 유니컨버스에 콜센터 업무를 위탁한 뒤 시스템 운용비를 과다하게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니컨버스는 2009년 관련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콜센터를 위탁받기로 한 뒤 통신사업자로부터 시스템 장비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이것이 자사가 누릴 수익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대한항공은 장비 사용료와 유지·보수비를 유니컨버스에 계속 지급했다.
유니컨버스 주식은 지난해 6월 현재 조양호 회장이 5.5%, 대한항공 조원태 부사장이 38.9%, 조현아 전 부사장과 조현민 전무가 각각 27.8%씩을 보유했다. 유니컨버스의 콜센터 사업 부문은 올해 4월 한진정보통신에 양도했다.
공정위는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가 대한항공과의 거래 조건이 정상적인 경우보다 자사에 상당히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해당 거래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박종배 공정위 제조업감시과장은 "이번 조치는 지난해 2월 본격 시행된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규정을 적용, 부당한 부(富)의 이전(터널링)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엄중하게 제재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면서 "앞으로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경제적 부를 총수 일가에게 부당하게 귀속시키는 내부 거래 관행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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