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 화담숲'-가을을 거닐다 노닐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화담(和談). 이름을 풀어 보면 조화롭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어감부터 정겨움이 가득합니다. 경기도 광주 발이봉 자락에 있는 곤지암 화담숲은 이름에 걸맞은 곳입니다. 국내 최다인 480종의 단풍들이 저마다의 고운 빛깔로 온 산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당단풍, 애기단풍, 산단풍…. 새빨간 아기 볼처럼 싱그럽게 물든 이파리들이 생에 마지막 불꽃을 틔우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람까지도 붉게 물들이며 도란도란 정겨운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단풍의 시기는 짧습니다. 어느새 왔나 하면 또 어느새 가버립니다. 그래서 알려진 단풍 명소는 몰려드는 인파들로 몸살을 앓을 정도입니다. 화담숲은 다른 명소의 단풍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덜 알려져 여유롭게 단풍숲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뒷짐 지고 산책로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가을과 화담을 나눌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엔 판교~여주 간 경강선 개통으로 강남에서 딱 40분이면 닿는 거리도 참 좋습니다.
단풍의 색은 푸른 빛이 붉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엽록소에 가려 있던 본래 붉은 색소가 가을이 되면서 파괴된 엽록소를 뚫고 드러나는 것이라 한다. 미당 서정주는 그걸 알고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고 했을까.
지난 주말 찾은 곤지암리조트 인근의 곤지암 화담숲은 초록이 지쳐 붉은 단풍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화담숲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내에서 가장 많은 480여 품종의 단풍나무를 보유하고 있다. 가을이면 각기 다른 품종의 단풍잎이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모습은 장관이다.
입구에 들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천년단풍나무다. 족히 200년은 넘은 단풍나무가 화담숲을 안내한다. 여기서부터 숲속산책길과 17개 테마원의 환상여행이 시작된다.
모노레일 매표소를 지나 약속의 다리에 올라서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화담숲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산책길은 경사가 낮은 데크로드로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갈지(之)자로 생긴 길을 천천히 걸어 30~40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사람의 손이 간 구조물이지만 자연의 일부처럼 전혀 거스름이 없다. 완만한 경사의 데크로드 덕분에 노인이나 어린이는 물론 유모차를 미는 여성도 쉽게 가을숲을 느낄 수 있다. 산책길 주변 곳곳에 쉼터와 의자를 마련해 놓아 자연을 감상하며 쉬어갈 수 있다.
화담숲 산책길을 굽어 흐르는 '가재계곡' 주변이 단풍 구경의 핵심이다. 가장 붉고 곱다는 '내장단풍'이 무더기로 모여 있다. 내장단풍은 내장산에 자생해 이름 붙여진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아기 손바닥 모양을 연상케 하는 얇고 깊게 패인 잎 모양이 특징이다. 당단풍도 놓치지 말자. 한국 고유 수종인데 잎이 9~11갈래로 갈라진 게 매력이다.
한 발 더 산책로에 든다. 곳곳에 빛깔 고운 내장단풍을 비롯해 붉은색의 당단풍, 산단풍, 적피단풍과 노란 잎으로 물드는 고로쇠나무, 중국단풍, 노르웨이단풍 등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간다.
군포에서 가을소풍 왔다는 한 어르신은 "좋다. 진짜 참 좋다"를 연발하시며 가을을 즐겼다.
단풍들이 바람에 한 잎 또 한 잎 붉은 물결이 쏟아져 내리면 나들이 나선 길손의 얼굴에도 붉은 가을이 물든다.
1000여 그루의 자작나무와 억새가 어우러져 운치 있는 '자작나무숲'을 지나면 이내 전망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화담숲과 리조트 스키장의 풍경은 이국적이다.
전망대를 지나면 '소나무정원'과 '암석원'이다. 푸른 기상의 소나무들 사이로 붉고 노란빛을 뽐내는 소나무정원의 단풍은 화담숲에서만 누릴 수 있는 이색 볼거리다. 소나무정원의 또 다른 이름은 '미완성 정원'이다. 한 그루 한 그루 멋스럽고 기품 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방문객의 사랑과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뜻이란다. 생각해 보면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모습처럼 아름다운 정경이 어디 있을까.
소나무정원을 지나 다다르는 암석원은 단풍나무가 가을바람에 흐드러진 억새와 수크령과 어우러져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화담숲 가드너 나석종씨는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크면 단풍색도 훨씬 밝고 진해진다. 올해 높은 일교차와 풍부한 일조량으로 어느 때보다 고운 빛깔의 단풍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단풍은 이달 말 절정을 보이며 내주 초까지 구경할 수 있다.
단풍과 함께 곤지암 화담숲의 가을을 다채롭게 하는 것이 바로 가을꽃이다. 하얀 구절초와 노란색의 감국 등 색색의 야생화가 탐방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벌과 나비는 겨울의 길목까지 피고 지는 은은한 향기의 해국과 꽃으로 차(茶)를 만들 정도로 향이 좋은 감국 주변으로 분주히 움직인다. 낙상홍, 산수유, 산사나무의 붉은 열매까지 달려 화려한 가을 정취를 빚어낸다.
보령에서 왔다는 여행객에게 화담숲이 어떤지 물었다. "행복하다"는 답변이 왔다. 그렇다. 이런저런 수식어가 뭔 필요가 있을까. 화담숲을 걷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을….
광주(경기도)=글ㆍ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길= 수도권에서 가면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 가다 곤지암IC를 나와 곤지암리조트 방면으로 가면 편하다. 판교~여주 간 경강선 개통으로 서울 강남에서 40분 거리다. 폐장 시간은 오후 5시30분이다. 입장료는 성인 9000원, 청소년ㆍ경로 7000원, 어린이 6000원이다. 모노레일 이용 요금은 별도다. 문의 031-8026-6666
▲볼거리= 경기도자문화박물관, 경안천 습지생태공원, 풀짚공예박물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남한산성 등이 있다. 광주 인근에 있는 여주에서는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오곡나루 축제가 신륵사 관광지 일원에서 오는 28~30일 열린다.
▲먹거리= 화담숲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한옥주막'이 있다. 고소한 녹두전과 두부김치 등 한옥주막과 어울리는 메뉴를 즐길 수 있다. 곤지암리조트 식당가에도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카페테리아'에서는 가을 환절기 면역력을 높이는 곤드레 건강밥상을 맛볼 수 있다. 리조트 부근에 곤지암소머리국밥집들이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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