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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와 史] 번역으로 역사변혁의 스타게이트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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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와 史] 번역으로 역사변혁의 스타게이트를 열자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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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하면 우리는 백인들이 흑인 노예들을 착취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7세기부터 수백 년 동안 지중해 연안의 수많은 백인 남녀들이 북아프리카 원주민에게 납치돼 노예로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교는 622년을 기원 원년으로 삼는다. 그 후 이슬람 세력은 파죽지세로 세력을 팽창했다. 북아프리카를 휩쓴 후 8세기에는 이베리아반도까지 진출했다. 지중해 제해권도 그들의 것이었다. 이슬람 해적이 기독교 세계를 처음 습격한 것은 652년이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출발한 이슬람 선박이 시칠리아 섬을 약탈하고 800명이나 되는 백인 남녀를 납치해 알렉산드리아 노예 시장에서 팔아버렸다.


에스파냐 동해안, 남프랑스,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코르시카와 사르데냐가 이슬람 선박들의 공격 대상이었다. 북아프리카에서 출항한 이슬람 선박들은 바다 건너 유럽에 바람처럼 쳐들어와 약탈하고 납치하고, 또 바람처럼 바다 저편으로 사라졌다. 말이 해적이지 상황에 따라 즉각 이슬람제국 정규 해군으로 편성되었다. 그 결과 이탈리아 반도 주민들에게 이슬람 해적에 대한 공포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달되는 세습의 감정이 되었다. 마치 조선조 백성들 사이에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 즉 호환(虎患)이 세습된 것처럼.

지중해에 면한 유럽 해안지방 주민들이 취할 수 있는 자위수단은 바다를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을 골라 망루를 세우고 이슬람 해적선을 한시라도 빨리 발견해 달아날 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는 것뿐이었다. 이탈리아어로 '토레 사라체노'(사라센의 탑)라고 부르는 이 망루는 지금도 지중해 바닷가 곳곳에 관광 유적으로 남아 있다.


납치되어 북아프리카에서 노예가 된 백인들을 구출하기 위한 단체가 설립되었다. 1197년 설립된 '구출수도회'와 1218년 설립된 '구출기사단'이다. 둘 다 국경을 초월한 조직으로, 교황의 후원을 받았다. 후원금을 모금해 몸값을 치르고 백인들을 구출했다. 요즘으로 치면 '국경 없는 의사회' 또는 '적십자'와 같은 단체다. 두 단체가 존속한 500년 동안 구출된 사람의 수는 모두 1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구출되지 못한 사람까지 모두 합치면 백인 노예는 수백만 명에 달했을 것이다.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한 이슬람문명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학문과 사상에서도 기독교 유럽을 압도했다. 이슬람문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자연과학, 유클리드의 수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과 광학, 아르키메데스의 공학,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의학 등 귀중한 그리스 고전 학문을 아랍어로 번역해 받아들였고, 여기에 그들 자신의 독창적 성과물을 덧붙여 발전시켰다.


11세기 팔레스타인에 출현한 기독교 십자군을 아랍인이 미개한 침입자로 간주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학문과 사상에서 크게 뒤져 있던 서유럽은 이슬람권에서 이룩된 학문적 성취를 접하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의 저자 리처드 루빈스타인은 중세 유럽인에게 이슬람의 학문은 마치 '스타 게이트'(행성 간의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와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미개한 서유럽이 선진 이슬람문명을 스승으로 모시고 열정적으로 배운 결과 새로운 역사 단계로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유럽이 스타 게이트를 연 열쇠는 '번역'이었다. 유럽인은 미친 듯이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고전들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중세 수도원 사서들에게는 '아랍어 해독능력'이 필수였다. 그리스어에서 직역할 능력이 없었기에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중역(重譯)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대대적인 번역 캠페인을 '12세기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어마어마한 열정으로 수많은 고전들을 라틴어로 번역했고, 그 노력이 축적된 결과 수백 년 뒤 근대가 밝아오자 이슬람과 기독교 진영의 우열은 역전되고 만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셈이다. 그때 이래 지금까지 서유럽 문명은 줄곧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번역을 통해 후발 문명이 선진 문명을 추월한 대표 사례다.


얼마 전 한글날이 지났다.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뽐내는가 하면, 잘못된 한글 표현을 쓰지 말자는 캠페인도 있었다. 하지만 대대적인 콘텐츠 확충을 통해 한글로 전 세계의 고급 지식과 정보를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번역 캠페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번역을 통해 '스타 게이트'를 통과해, 변방에서 세계사의 주류로 등극한 서유럽의 역사적 사례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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