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事와 史] 노동을 천시하는 사회

시계아이콘01분 56초 소요

[事와 史] 노동을 천시하는 사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AD

1935년 11월3일, 베를린올림픽(1936)에 출전할 일본 마라톤 대표선수 선발전이 도쿄에서 열렸다. 손기정 선수는 2시간 26분 42초라는 세계최고기록으로 뽑혔다. 그해 말 손기정 선수의 국가대표 선발 축하연이 서울 명월관에서 열렸다. 미국 선교사이자 경신(儆新) 학교장인 게일(James S. Gale, 1863~1937) 목사가 축사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양 사람들이 정구(테니스) 하는 걸 보고서는 ‘왜 힘든 일을 하인에게 시키지 않느냐’던 조선 땅에서 오늘 이렇게 훌륭한 마라톤 우승자를 키워냈다. 손기정 군의 우승을 보니 조선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게 된다.”

게일 목사의 말처럼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몸 쓰는 일을 천하게 여겼다. 운동마저도 하인이 할 일로 여겼으니, 육체노동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역사에서 노동신성(勞動神聖) 이념은 뿌리를 내린 적이 없었다.


로마제국도 마찬가지였다. 역사학자들은 로마제국 멸망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노예제와 인력부족에 기인한 농업생산성의 저하를 꼽는다.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98-117)까지만 해도 로마는 정복 전쟁으로 노예 인력을 공급함으로써 노예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 로마는 극심한 인력난에 빠졌다. 정복 전쟁이 중단되자 노예 공급이 중단된 것이다. 농산물 수확이 감소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농업 기술이 발전되지 않은 것도 노예제 탓이었다. 세계사 어느 시대를 봐도 농업생산성 향상은 기술 혁신의 결과였다. 그러나 로마의 지주들은 기술 문제에 관심 갖는 것이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 여겼다. 일할 수 있는 노예 노동력이 존재하는 한 노동력 절감에 무관심했고, 기계 장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천박함의 표시로 여겨졌다. 이렇듯 지주들이 ‘고상한 일’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동안 로마 경제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事와 史] 노동을 천시하는 사회


서로마제국은 476년 멸망한다. 그 후 6세기에 등장한 베네딕투스(베네딕도) 수도회는 육체노동에 대한 서양 사회의 고정관념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귀족의 최고 이상은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여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베네딕투스 수도회 창립자인 베네딕투스(480-547)는 수도사들에게 항상 바삐 일할 것을 권했다.


그는 ‘게으름이야말로 영혼의 적’이라고 믿었다. 그는 수도사들이 일정 시간 동안 육체노동에 종사하도록 규칙을 정했는데, 고대 그리스·로마의 귀족이나 철학자들이 이 규칙을 접했더라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노동신성 이념이 탄생한 것이다.


초기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은 그들 스스로 열심히 노동을 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노동의 존귀함에 관한 이념을 확산시켜 나갔다.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활동에 힘입어 노동신성 이념은 서양 문화와 전통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베네딕투스 수도사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소젖을 짜고, 타작을 하고, 쟁기질을 하고, 망치질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수도원에 번영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 베네딕투스 수도원들은 특히 농업 방면에서, 나중에는 영지 경영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서유럽의 경제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농업만이 아니다. 그들은 고전을 베껴 쓰는 필사본(manuscript) 제작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고전 문헌 보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 추진력을 제공한 인물은 로마의 정치가이자 수도원 설립자인 카시오도루스(477-570)였다. 카시오도루스는 고전을 필사(筆寫)한다는 것 자체가 ‘육체노동’(manual labor, 손으로 하는 노동)이며, 그것이 농업노동 못지않게 수도사들에게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카시오도루스의 사상에 공감한 베네딕투스 수도원들은 수백 년간에 걸쳐 고전 교육 및 필사의 유일한 중심지가 되었다. 중세 초기 수도사들이 필사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고전 라틴 문헌들은 오늘날 한 편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으로부터 80년이 지났다. 스포츠에 대한 인식은 변했지만, 육체노동을 하찮게 보는 전통은 여전하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8월6일 CJ대한통운 택배기사 안 모씨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극악한 노동 조건에서 과로한 때문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온몸을 던져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소방관들의 모습도 어른거린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존중과 정당한 대접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박상익 우석대 교수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2.0307:05
    전문가 4인이 말하는 '의료 생태계의 대전환'[비대면진료의 미래⑥]
    전문가 4인이 말하는 '의료 생태계의 대전환'[비대면진료의 미래⑥]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

  • 26.02.0307:04
    벼랑 끝에 선 '닥터나우 방지법'…플랫폼 규제 해법은?
    벼랑 끝에 선 '닥터나우 방지법'…플랫폼 규제 해법은?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

  • 26.02.0307:03
    탈모·여드름 치료제만 급증…'처방전 자판기' 막으려면
    탈모·여드름 치료제만 급증…'처방전 자판기' 막으려면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

  • 26.02.0307:02
    "집에서 진료받고 약 배송은 불가?"…'반쪽짜리' 제도
    "집에서 진료받고 약 배송은 불가?"…'반쪽짜리' 제도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

  • 26.02.0307:01
    "환자 편의 높이되 더 안전하게"…하위법령 논의 착수
    "환자 편의 높이되 더 안전하게"…하위법령 논의 착수

    편집자주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 긴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 의사를 만나는 시대. 비대면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의정 갈등 시기 한시적 허용과 시범사업 등을 거쳐 올 연말 본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격오지와 취약계층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편리함과 함께 약 배송 금지에 따른 이용 한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이 공존하고 있고, 의료계와 플랫폼업계, 환자단체 사이의 시각차 또한 여전히 팽팽하다. 의료산업의 패

  • 26.01.2306:55
    "한류 지금 르네상스…각국 인허가 뒷받침 필요"⑫
    "한류 지금 르네상스…각국 인허가 뒷받침 필요"⑫

    지난해 11월 말 주베트남한국문화원 주최로 베트남 하노이 OEG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한국게임주간'.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게임산업과 문화를 교류하기 위해 3년째 진행하는 이 행사에는 50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사흘간 열린 행사 중에는 양국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크로스파이어 등 e스포츠 대회 세 종목의 예선과 결선도 있었다. 이 자리에 한국 e스포츠팀 DRX 소

  • 26.01.2214:58
    베트남 '하노이 핫플' 韓 쇼핑몰 그대로 옮겨놨네
    베트남 '하노이 핫플' 韓 쇼핑몰 그대로 옮겨놨네

    ⑩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인 '서호(West Lake)'를 마주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출입문 앞 광장의 분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빅뱅의 '하루하루' 등 K팝 리듬에 맞춰 조명과 물줄기가 시시각각 변했다. 한껏 멋을 낸 20대 여성들과 어린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은 분수대와 쇼핑몰을 배경으로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내부는 화이트톤 인테리어부터 떡볶이 무한리필 뷔페 '두끼'와

  • 26.01.2209:09
    "어라, 여기가 한국인 줄"…떡볶이 무한리필에 뷰티숍까지 '하노이 핫플' ⑩
    "어라, 여기가 한국인 줄"…떡볶이 무한리필에 뷰티숍까지 '하노이 핫플' ⑩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인 '서호(West Lake)'를 마주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출입문 앞 광장의 분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빅뱅의 '하루하루' 등 K팝 리듬에 맞춰 조명과 물줄기가 시시각각 변했다. 한껏 멋을 낸 20대 여성들과 어린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은 분수대와 쇼핑몰을 배경으로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내부는 화이트톤 인테리어부터 떡볶이 무한리필 뷔페 '두끼'와 중식당 '연경',

  • 26.01.2207:11
    맥날은 체면 구겼는데…"치킨 염지까지 맞춰" 까다로운 베트남서 '훨훨' 롯데리아 ⑨
    맥날은 체면 구겼는데…"치킨 염지까지 맞춰" 까다로운 베트남서 '훨훨' 롯데리아 ⑨

    베트남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인 서호(West Lake)를 바라볼 수 있는 롯데리아 락롱콴점. 4만6000동(약 2500원)짜리 치킨볼 라이스를 주문하자 10조각 남짓한 팝콘 치킨에 안남미로 지은 밥 한덩이와 달걀 프라이, 토마토와 양배추샐러드 등이 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겉면에 윤이 나는 소스를 바른 팝콘 치킨을 한 입 베어 물자 강렬한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우주 베트남 롯데리아 운영팀장은 "퀵서비스 레스토랑(QSR)에서 버

  • 26.01.2115:53
    '뷔 얼굴' 하나로 국적이 바뀌었다…한국어만 들어가면 불티나게 팔려
    '뷔 얼굴' 하나로 국적이 바뀌었다…한국어만 들어가면 불티나게 팔려

    지난달 일본 최대 뷰티 편집숍 '앳코스메 도쿄(@come TOKYO)'는 일본 뷰티 브랜드 '윤스(Yunth)' 팝업스토어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줄로 북적였다. 일본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관광객이 자주 찾는 쇼핑의 거리 '하라주쿠'에 위치한 매장은 K팝 아이돌인 방탄소년단(BTS) 뷔의 대형 사진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윤스는 지난해 10월29일 뷔를 앰버서더로 발탁했다. 이 때문에 일부 방문객들은 윤스를 K뷰티 브랜드로 오

  • 26.02.0511:23
    박원석 "전한길, 이석기보다 훨씬 더 위험"
    박원석 "전한길, 이석기보다 훨씬 더 위험"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박원석 전 국회의원(2월4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박원석 전 의원과 함께 여러 가지 이슈들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원석 : 네, 안녕하십니까. 소종섭 : 오늘 장

  • 26.02.0314:25
    장성철 "한동훈의 알파와 오메가는 배지"
    장성철 "한동훈의 알파와 오메가는 배지"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2월 2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과 함께 여러 가지 이슈들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정치, 지난주 토요일부터 오늘 오전까지 9개를 올렸습니다.

  • 26.01.2907:47
    정청래 비판한 김민석, 치열한 두 사람의 '장군멍군'
    정청래 비판한 김민석, 치열한 두 사람의 '장군멍군'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군멍군'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올 8월 전당대회를 향한 움직임이다. '8월 전대'는 누가 당 대표가 되느냐를 넘어 여권의 권력 지형을 가르는 의미가 있다. 정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그의 정치적 힘은 지금보다 더 커진다. 여권 내 위상이 올라가는 것도 당연하다. 2028년 국회의원 선거의 공천권을 쥐기 때문이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대표가 된다면

  • 26.01.2811:24
    이언주 "합당은 선거에 악재, 정 대표 행동 용서받기 어려워"
    이언주 "합당은 선거에 악재, 정 대표 행동 용서받기 어려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 긴장감이 높아가는 흐름이다. '명청대전'이라는 말이 나오더니 최근에는 최고위원회에서 직접 언쟁을 주고받았다. 일부 최고위원들이 회의에 불참하는 일도 벌어졌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세력 격돌이 서서히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은 그 한가운데 있다. 최근 이 수석최고위원과 두 차례 인터뷰했다. 지난 21일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해 1시간 인터뷰했고, 27일엔 전화

  • 26.01.2611:31
    윤희석 "오세훈 프레임 바꿔야", 서용주 "정원오 재료 좋아"
    윤희석 "오세훈 프레임 바꿔야", 서용주 "정원오 재료 좋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서용주 맥정치사회연구소장,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월 22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님과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 두 분 모시고 최근 여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