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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이후 오늘 '처형'된 이정재의 깡패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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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 "나도 잘못 있기에 억울하단 말 안해"라며 형장 이슬로…정치명망 꿈꾼 주먹의 종말


5.16 이후 오늘 '처형'된 이정재의 깡패인생 일제강점기 엘리트로, 해방직후 경찰로 살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은 어쩌면 사실이 진실이 되지 못하고 권력의 향방에 역사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정국혼란의 현실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변명으로도 가릴 수 없을만큼 그는 정치깡패이자 자유당 정권의 부역자로 무참히 만행을 저질렀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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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5.16 군사정변은 하루아침에 권력의 방향 추를 뒤집어 놓았다. 자유당 정권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렸다던 정치깡패 이정재는 군부에 구속 된 지 나흘 만에 혁명재판을 앞두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고 적힌 플랜카드와 함께 조리돌림 당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씨름판의 장사에서 경찰로, 해방 후 주먹에서 정치인으로 끊임없이 변모를 꾀했던 그는 반세기 전 혼란의 서울에서 어떤 최후를 맞았을까? 결정적 순간에 내려놓을 줄 알았던 그의 처세는 정국 혼란의 상황에서 전에 없던 자리를 그에게 만들어줬으나, 타협할 줄 몰랐던 성격은 한순간에 그를 몰락의 절벽으로 몰아 세웠다.



5.16 이후 오늘 '처형'된 이정재의 깡패인생 5.16 군사정변 당시 체포 후 서울 시내를 돌며 조리돌림 당한 정치깡패들 중 이정재는 선봉에 서 있었다. 혁명재판을 앞두고 그는 '국민의 심판을 받겠읍니다'란 플랜카드를 뒤로 한 채 시민들 앞을 지나며 비난과 야유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엘리트 경찰


고향 이천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이정재는 인근 지역에서 알아주는 '씨름왕'이었다. 전국규모로 이천에서 개최된 씨름대회에 출전, 상금으로 나온 황소 10마리가 모조리 그의 차지가 됐다는 일화는 오늘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전해질 정도.


부유한 집안 형편과 부친의 든든한 지원으로 상경, 중앙고보를 거쳐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신흥대학교(경희대학교의 전신)에 진학할 만큼 당대의 엘리트였던 그는 태평양전쟁 발발 후 징용을 받고 반도의용정신대로 피신하면서 김두한과 인연을 맺는다. 고학력자인 그를 눈여겨본 김두한의 추천으로 경찰이 된 뒤로는 그의 세력을 비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경찰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던 중 해방을 맞았다.


5.16 이후 오늘 '처형'된 이정재의 깡패인생 일제강점기 친일파 청산을 위해 조직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발족 기념사진. 1948년 10월 23일 국회에서 1차위원회를 소집한 뒤 촬영됐다.


해방 직후, 포목점 사장


해방직후 혼란기에 잠시 경찰을 떠나있던 그는 이내 다시 복직, 정부 수립 후 반민특위 특별조사위원회 서기이자 특경대원으로 친일파 색출에 나선다. 경찰 복무 당시에도 그는 친일과는 거리를 둔 독특한 조선인 경찰이었고, 친일경찰의 전횡을 옆에서 똑똑히 지켜본 바 있었기에 주어진 임무에 더욱 매진했으나 1949년 6월 6일,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 방해에 위원회가 와해되자 사직하고 처가가 터를 잡고 있던 동대문에서 포목점을 경영하며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고 상인으로 눌러앉으려 했다.


5.16 이후 오늘 '처형'된 이정재의 깡패인생 이정재가 부산으로 피난 온 당시 지역 깡패와 시비가 붙어 집단 구타당한 위기에서 그를 구해준 시라소니 이성순. 전쟁 후 서울로 복귀한 뒤에도 시라소니와 이정재의 관계는 각별했으나, 동대문 상권에 얽힌 사소한 시비로 둘의 사이는 아예 틀어져버렸다. 사진은 시라소니 이성순의 말년 모습.


6.25 전쟁, 주먹세계 투신


북한군이 서울까지 단숨에 밀고 내려와 도시 전체를 장악하자 미처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한 이정재는 과거 경찰 전력이 문제 되어 북한군에 체포,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이때 훗날 매제가 되는 김기홍의 구명으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뒤 부산으로 내려간 그는 지역 깡패들과 시비가 붙어 집단 린치당하는 상황에서 시라소니의 극적인 등장으로 빠져나오며 두 번의 목숨과 두 명의 인연을 얻고 전쟁에서 살아남아 서울로 복귀한다.


동대문 시장으로 돌아온 이정재는 스스로의 생존과 눈앞의 이권, 과거의 인연들에 대한 다층적 고민 끝에 주먹이 되기로 결심하고 1953년 동대문 상인연합회를 조직해 회장에 취임하는데, 종전의 주먹들이 구역 내 상인들에게 다양한 명목으로 갈취와 폭력을 일삼았다면 이정재는 다른 방식으로 구역과 조직을 관리했다. 말끔한 양복을 갖춰 입고 포마드로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한 동대문파 일원들은 상인들에게 폭력을 일삼기는커녕 되려 상인들의 애로사항을 바로바로 접수해 깔끔하게 해결해주는 것으로 일대 상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물론 이 이면에는 시장형성 당시 ‘광장 주식회사’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땅을 상인들에게 높은 값에 판매해 취한 폭리, 시장의 전기세, 전화세 부과 시 자가발전 명목으로 가구당 300환이던 관영요금을 2,000~2,500환까지 높여 받아내는 비열한 수법이 존재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암리에 축적한 막대한 이권을 바탕으로 이정재와 동대문파는 그 세력을 더욱 확장해나갔다.


5.16 이후 오늘 '처형'된 이정재의 깡패인생 정치인으로서의 무능을 이승만에 대한 충성으로 상쇄하고자 한 이기붕의 계책은 무모하고 강압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이정재를 이용해 성난 민심을 폭력으로 잠재우려 했지만 정작 자신이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자 이정재의 지역구를 빼앗아 출마를 결심할만큼 기회주의자였다. 사진 왼쪽 이승만 대통령, 사진 오른쪽 이기붕 당시 부통령.


자유당 정권, 정치깡패


당시 이정재는 동대문 광장 입구에 시가 1억 환 가치의 3층 건물을 세우고 옥상에 도장을 마련해 부하들의 체계적 육성시스템을 갖춰나갔다. 서울 시내 하부조직만 10개 파를 거느린 동대문파를 비롯, 외부에는 문화예술계를 접수한 임화수가 그의 곁에 있었고 그와 동향 출신에 호형호제하던 곽영주는 이승만 정권의 경무대 경찰서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유당에 입당해 감찰부 차장이 되면서 정권의 2인자 이기붕과 인연을 맺었고,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모든 지시와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동시에 정치권에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해 나갔다.


사사오입 개헌 당시 국회방청객 난동, 자유당 창당동지회 방해, 단성사 저격사건의 배후에는 이정재가 있었다. 해방과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사회 전반에 혼란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대한민국 현실에서 저격과 암살, 테러와 난동은 호외 감도 안 되는 조간신문 박스 기사 거리에 불과했다. 나와 뜻이 다른 사람이라면, 내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되는 자라면 거침없이 제거하고 쟁취하려 들었던 자유당 권력자들의 전횡에 국민들은 서서히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편, 이정재는 부와 권력을 등에 업고 나자 명예가 간절해졌다. 13대째 터를 잡고 지내온 고향 이천을 지역구 삼아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야망을 갖게 된 그는 그길로 지역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지역 내 296개의 부락을 일일이 방문하며 애로사항을 보고받고 대소사를 처리하는가 하면 관내 학교에 발전기금과 장학금을 지원해 인재육성을 꾀하고, 지역 방문 때마다 당시 귀한 물건이었던 고무줄을 무상으로 주민에게 지급하는 등 표밭을 튼실히 다져놓았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던 자유당 정권의 전횡에 염증을 느낀 국민 정서가 이정재의 ‘아버지’ 이기붕에게도 예외가 없었다는 것.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서대문구에서 당선이 불투명해지자 조상의 선산이 있는 이천으로 눈을 돌려 출마를 시도했고, 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하자 이정재는 강하게 반발했으나 권력의 2인자 앞에 그의 완력과 수완은 무용지물. 결국, 출마를 포기한 그는 동대문 패권 또한 내려놓고 북악산 자락의 폐가를 얻어 주택을 짓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5.16 이후 오늘 '처형'된 이정재의 깡패인생 재판정에서 자신의 판결내용을 기다리는 이정재. 그는 이때 이미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던 것일까? 불안과 초조가 아닌 초연한 표정이 그의 심경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5·16 군사정변, 사형수


4·19혁명 당시 정권 측 진압에 자신의 수하들이 가담한 탓에 스스로 검찰에 출두해 정치테러의 원흉으로 조사를 받고 풀려난 그는 이듬해 5.16 군사정변 세력에 다시 체포되었다. 자유당 정권의 주요인사들이 대거 구속되며 생존을 위한 폭로성 증언이 이어지며 수면 위로 떠오른 ‘화랑동지회’ 사건으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이미 앞선 두 차례의 구속에서 자신의 죗값에 대해 비교적 적확하게 인식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유언 중 “나도 잘못은 있기에 억울하단 말은 안 한다”고 말한 대목은 이 같은 그의 상황 인식을 반증한다. 1961년 10월 19일 서울형무소 형장에서 처형됐을 때 그의 나이 44세였다.


해방 직후 서울은 혼란과 무질서의 도시였다. 새 정부가 자리를 잡아가던 찰나에 터진 6.25는 정치와 사회 그 어느 것에서도 온전한 것을 남기지 않고 초토화시켰고, 전후 혼란스럽던 사회상을 일거에 정리하기 위해 자유당 정권이 동원한 부정의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정치깡패’였다. 어느 시대건 권력에 기생해 막강한 힘을 휘두른 부역자는 존재해왔다. 이정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오늘, 새삼 완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시인할 줄 알았던 그의 모습이 잠적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어떤 이들의 모습에 비춰봤을 때 비교적 낭만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착각일까.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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