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성 이대목동병원 로봇수술센터장
후유증 적은 장점에 로봇수술 분야 도전
모든 수술은 환자-의사 사이 신뢰 바탕
AI 발달할수록 의사의 감성적 역할 중요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질병 이름을 입력한 후 투명한 원통형 캡슐 모양에 눕는다. 인공지능(AI)이 자동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최적화된 치료법을 찾아 로봇팔로 수술을 진행한다. 2154년 미래를 배경으로 한 공상과학(SF) 영화 '엘리시움'의 한 장면이다.
로봇수술은 이미 국내 의료계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아직 영화에 나오는 것과 같은 기술을 갖고 있지는 않다. 현재의 로봇 수술은 복강경 수술(인체에 지름 1㎝ 안팎의 구멍을 뚫은 뒤 의사가 그 안으로 얇은 도구를 넣어 하는 수술)을 다소 발전시킨 형태다. 로봇 팔의 끝에 있는 얇은 로봇 손이 복강경 수술 도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집게ㆍ가위 등이 달려 있는 이 로봇 손을 의사가 원격으로 조종해 수술한다.
문혜성 이대목동병원 로봇수술센터장은 국내 복강경 로봇수술의 권위자다. 문 센터장은 산부인과 의사로 자궁경부암을 비롯해 자궁근종, 자궁선근증, 자궁내막증 등 자궁과 난소에 자라난 양성 종양을 그만의 특화된 로봇술기로 제거한다. 자궁과 난소 종양으로 고통 받는 전 세계 여성 환자들이 문 센터장에게 수술을 받고자 이 병원을 찾는다.
문 센터장은 "최근 알파고로 인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로봇수술에 대한 문의도 늘었다"면서 "현재의 로봇수술을 직접 보면 영화 속 모습과는 달라 실망할 수도 있지만 여행용 가방에 넣어 갖고 다니면서 수술할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대가 오면 의사의 감성적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술은 수학공식이 아니다" = 문 센터장은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국을 병원에서 여러 의사, 간호사들과 함께 지켜봤다고 했다. 대국 후에는 우리 의료계의 진화가 어떻게 이뤄질 것 같은가에 관한 대화도 나눴다. 결론은 반복되는 작업의 경우에는 로봇이 할 수 있지만 메인 수술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문 센터장은 "집대성한 빅데이터를 통해 유추해서 판단할 수 있는 분야에서 로봇의 활용도는 더욱 많아지고 더 밀착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수술은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인공지능은 진단검사의 결과 분석과 질환 예측, 영상의학 판독 후 질환 예측이나 수술분야 보조, 내시경 검사, 초음파 검사 등 기본검사 정확도를 높여줘 의료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데이터 등을 토대로 환자의 증상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로봇이 아니라 결국 의사가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문 센터장은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신뢰'"라며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수술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인공지능은 보조적인 어시스턴트의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포기란 단어를 지워라" = 문 센터장은 어릴 적부터 새로운 시도를 즐겼다. 특히 한 번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의과대학 시절 해부학 수업을 위해 실제 시체(카데바)를 활용한 실습을 진행할 때의 일이었다. 포르말린에 절어 있는 시체를 직접 만지며 혈관의 모습 등을 살피던 문 센터장은 손을 덮고 있는 고무장갑으로 인해 제대로 된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결국 장갑을 벗어던지고 맨손으로 시체의 신경과 혈관 등을 만지며 그 차이를 느꼈다. 실습이 끝났을 때 문 센터장의 두 손은 온통 포르말린으로 절어 있었다. 문 센터장은 지금도 조직을 검사할 때 맨손으로 만져보고 질환 상태를 판단한다고 했다.
문 센터장은 "한 번은 미국의 로봇수술 대가로부터 초청을 받아 갔었는데 환자 조직을 놓고 질환에 대한 의견 차이가 생긴 적이 있었다"면서 "언뜻 봤을 때는 그 의사의 소견이 맞았지만 직접 만져보니 달랐고, 정밀검사한 결과 내 손의 감각이 맞았다"고 귀띔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전임의(펠로우) 과정을 거칠 때는 항상 의사 가운 단추에 실을 묶고 다녔다. 수술 부위의 봉합 매듭을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전문의가 되서도 그걸 연습하냐는 핀잔도 듣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동기에게도 배움을 요청할 때는 "뭘 그런 것까지 묻냐"는 타박도 받았다.
문 센터장은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 대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선배가 아니라 동료, 후배한테도 배워야 한다"면서 "로봇수술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된 것도 환자에게 후유증이 적다는 장점 때문"이라고 말했다.
◆"완벽주의자? 수술실에서 연습이란 없다" =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격이다보니 완벽주의자라는 말도 듣는다고 했다. 통상적으로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모든 준비가 끝난 이후 수술실에 들어오는 것이 관례이지만 문 센터장은 지금도 다른 이들과 수술실에 같이 들어가 함께 준비를 도운다고 했다.
문 센터장은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목표하는 바에 도달하기 위한 연습량은 다를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수술이란 결코 실수가 일어나서는 안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열과 성을 다해 본인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했다.
문 센터장은 "작은 실수도 대충 넘어가지 않아 주위에서 부담스러워 한다는 말도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결코 수술실에서 연습하면 안된다"고 못박았다.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 문 센터장은 의사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훌륭한 의사'와 '즐거운 의사'다. 일과 가정 중 어디에 시간을 더 투자하느냐의 차이다.
그는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최종적으로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묻는다"면서 "정말 훌륭한 의사가 목표라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힘들지만 업무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고 했다.
어떤 쪽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 차이이기 때문에 결국 본인이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의사는 공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문 센터장은 "자신도 교수를 때려치고 싶은 적이 2번, 의사를 때려치고 싶은 적이 2번 있었다"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후회할 때가 있는데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끼워 맞춰서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건 내 가족" = 의사는 남들한테 존경받는 직업이지만 여의사에게는 드러나지 않는 편견과 무시도 존재했다.
문 센터장은 "이쪽 세계에서도 여자 의사를 채용한다면 육아와 출산 문제에 관련해 뭔가를 도와줘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해 채용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남편의 지원은 물론, 시댁에서 육아를 도와준 것이 의사로서의 경력을 쌓는데 커다란 보탬이 돼 지금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센터장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시댁에서 키웠던 딸을 집으로 데려가려 했을 때 엄마를 거부하는 딸의 모습에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문 센터장은 "그때 남편을 부여잡고 1시간 넘게 울었던 것 같다"면서 "미국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딸이 할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해 결국 미국행을 포기했다"고 고백했다.
최근 그는 대학생이 된 딸에게 엄마를 존경하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내 자식한테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한테도 존경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에서였다.
문 센터장은 "딸이 엄마는 사회적으로 볼 때 존경스러운 사람은 맞는데 집에서는 평균이라고 말했다"면서 "왜냐고 물어보니 밥 해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며 웃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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