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크 복제율 50%' 지침에 중소형주 외면·대형주 쏠림 심화
-중소형주 수급 악화로 중소형주 주가 하락
-자율적 자금운용 사실상 제한…"연기금, 장기투자 제 역할 못해"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최동현 기자] "장기투자형 위탁 운용사에 벤치마크(BM) 복제율을 50%로 맞추라네요. 국민의 노후자금을 장기간 운용해야 하는 국민연금이 멀리 내다보는 안목은 없고 시류에 급급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국민연금이 운용사에 자율성보다는 시장상황에 맞춘 투자를 강조하면서 펀드매니저들이 애를 먹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주가 올라가는 장세 속에 연기금의 정책이 대형주 쏠림, 중소형주 수급 악화를 심화시키면서 중소형주에 투자하는 펀드들의 수익률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피 대형주 지수는 하반기 들어 전날까지 3.08% 올랐다. 같은 기간 중형주가 0.49% 하락하고 소형주는 0.19% 내린 것에 비해 눈에 띄는 상승폭이다. 중소형주가 대부분인 코스닥지수도 이 기간 1.99% 빠졌다.
운용업계에서는 이 같은 대형주 쏠림 현상에 대한 일부 책임이 국민연금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운용사들은 국민연금의 일부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데 국민연금이 지난 6월 이들에 순수주식형, 장기투자형, 대형주형의 경우 BM(코스피 등 벤치마크 수익률)을 50% 이상 복제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연기금은 지난 6월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내년부터는 의무화할 방침이라 운용사들은 이미 연기금 가이드라인에 맞춰 투자에 나서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대형주 장세가 펼쳐지는 상황에서 운용사들은 BM을 따라가기 위해 중소형주를 내다 팔고 대형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 특히 대형주 중에서도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의 18%(코스피200지수 내 비중은 25%에 육박)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에 자금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하반기 들어 삼성전자 주가가 하룻새 8% 넘게 폭락하기 직전인 10일까지 14.59% 상승한 것도 기관의 매수세가 집중된 데 기인한다.
게다가 국민연금이 중소형주형 투자에서조차 운용사에 정해진 종목 풀(pool) 안에서 선별해 투자하라고 요구하면서 사실상 펀드매니저의 자율적인 운용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국민연금의 지침으로 운용사 입장에서는 연기금 자금 운용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 대형주 쏠림에 따른 중소형주 펀드 수익률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국내 액티브 중소형주 펀드 수익률은 최근 3개월 -3.62%, 6개월 -6.72%, 연초후 -8.48%로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각각 2.37%, 3.33%, 6.2%)에 비춰보면 이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지난 10일 기준).
연기금의 투자 가이드라인으로 중소형주가 외면받으면서 연기금이 자본시장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책임론도 나온다.
한 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진흙 속에서 미래의 삼성전자가 될 수 있는 보석같은 기업을 발굴해 장기투자하는 게 국민연금의 역할"이라며 "국민연금이 기업의 성장 전망과 장기 투자 성과는 고려하지 않고 단기 수익률 하락이라는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시황에 편승해 투자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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