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씌워주고, 캐디백 세워둬 벌타, 카트 타서 실격
[아시아경제 노우래 기자] "미워할 수도 없고."
경기 도중 실수를 범한 '아빠 캐디' 이야기다. 김예진(21)은 생일인 지난달 28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이원리조트여자오픈을 제패해 짜릿한 생애 첫 우승을 일궈냈다. 하지만 최종 4라운드 7번홀(파4)에서 규칙 위반으로 2벌타를 받는 등 마지막까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캐디로 나선 아버지가 파 퍼팅이 끝날 때까지 우산을 받쳐줘 규칙을 위반한 게 출발점이다.
5타 차 선두를 달리다가 순식간에 파가 더블보기로 바뀌면서 한 때 1타 차까지 추격을 당했다. 벌타를 받은 뒤에는 폭우 속에서 아예 우산 없이 플레이 했고, 다행히 2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아빠 책임이 아니라 전부 내 책임"이라는 김예진은 "평소 잘 웃는 아빠가 너무 미안해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며 "남은 경기를 더 독하게 칠 수 있는 동력이 됐다"고 했다.
올해 2승을 쓸어 담아 KLPGA투어를 대표하는 '빅 3'로 성장한 장수연(22)에게도 '아픈 추억'이 있다. 2010년 현대건설오픈 최종 3라운드에서다. 캐디를 맡은 아버지가 15번홀 그린 주변에 백을 세워둔 게 악몽의 시작이다. 갤러리가 장수연이 칩 샷을 할 때 캐디백의 도움을 받았다고 제보했고, 경기위원회는 비디오 판독을 거쳐 '플레이 선을 지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칙을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이미 우승 세리머니를 마쳤지만 2벌타 후 다시 연장전을 속개한 끝에 이정은(28ㆍ교촌F&B)에게 우승컵을 상납했다. "KLPGA의 무리한 룰 적용"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바로 전 주 아마추어 배희경(24ㆍ호반건설)이 LIG손해보험클래식에서 '프로 언니'들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자 2주 연속 아마추어 챔프가 나오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는 배경이다.
나이가 많은 아빠 캐디는 실수가 많다. 홀과 홀 사이를 이동시키는 카트인 줄 알고 착각하고 탔다가 벌타 또는 실격을 초래하는 경우다. 라운드 도중 딸의 플레이를 지켜보다가 말싸움을 하고, 화를 참지 못하고 가방을 놓고 가기도 한다. 캐디는 아니지만 딸의 아웃 오브 바운즈(OB)난 공을 살려주는 '대형사고'를 친 아버지도 있었다. 지나친 애정이 황당한 해프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우래 기자 golfm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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