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거에는 영화를 보려면 극장에 가야 했다. '주말의 명화' 같은 TV 프로그램('놓치면 후회한다'는 정영일 평론가의 담백한 해설과 함께)을 방송하기는 했지만 내가 영화를 선택해서 보려면 극장에 가는 것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TV는 대부분 흑백이었다. 대통령이 권총에 쓰러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컬러TV가 대한민국에 당도했다. 권투를 즐겨보던 나는 컬러TV를 보고 나서야 권투선수가 흘리는 피가 검은 색이 아니라 빨간색이라는 걸 알았다. 부유한 친구 집에 가면 소니 컬러TV와 베타 방식의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한 달에 한번 친구 어머니가 오랜 시간 집을 비우면 친구 집 안방에 둘러 앉아 청소년이 보면 안 되는 비디오를 감상하면서 침을 삼켰다. 그 때 그 시간 그 장소만큼은 우리들만의 성(性)스러운 컬트극장이었던 셈이다.
컬러 TV가 보급되자 곧 이어 VTR이라는 마법의 상자가 따라 나왔다. 카세트테이프에 음악을 녹음해서 듣던 때에 영화를 녹음하듯 녹화해서 볼 수 있다니. 이건 뭐랄까, 혁명이었다. 해글러, 헌즈, 레너드의 권투경기를 TV 앞을 지키고 있지 않아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를 녹화해서 원하는 시간에 보고 또 볼 수 있었다. 영화도 책이나 음반처럼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VTR이 보물상자였다면 지금은 사라진 비디오대여점은 보물섬이었다. 영화를 자주 반복해서 보다 보니 나름 눈도 높아졌다. 비디오대여점에 가면 눈썹 위로 올라간 눈높이를 충족시켜주는 영화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들을 찾아 헤맸다. 놀랍게도 장 뤽 고다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발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필름 영화 상영비율인 레터박스는 고사하고 TV화면에 맞추기 위해 좌우는 실종되었고 2시간 남짓 테이프 분량에 맞추기 위해 영화는 사지절단 되었다. 엉터리 자막에 화질은 처참했다. 사당동, 대학로, 홍대 앞의 시네마테크를 순례하던 때도 이 시절이다. 담배 연기 자욱한 공간에서 10대에 친구 집 안방에서 비디오를 보듯 심각하게 영화를 보았다. 동호인들과 가까워졌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했다. 그리고 내 방에 VTR 한 대를 더 들여 놓았다. 빌린 테이프를 복사했다. 책꽂이에 책보다 비디오테이프가 훨씬 많아졌다.
마침내 DVD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완벽한 화질에 음향까지 비디오테이프와는 차원이 다른 경지였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소비를 강요한다. 책꽂이를 보면서 상념에 잠겼다. 저 많은 비디오테이프를 DVD 타이틀로 바꿔야 하나.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퀸의 음반을 해적음반(소위 빽판)으로 처음 구입하고 라이센스 LP로 샀다가 오리지널 LP로 바꾸고 결국엔 CD로 샀던 것처럼.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눈물겨운 내핍과 발품으로 평생을 끌어안고 살 것처럼 여겼던 비디오테이프와 이별했다. 그 빈자리에 DVD타이틀이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았다. 이 해괴한 짓을 바라보는 아내. 차라리 한마디 하지 그 말없음이 더 무서웠다. 이후 블루레이가 등장하여 나를 또 당황하게 했으나 그 충격은 이전에 비하면 가벼웠다. 블루레이플레이어로 DVD타이틀을 볼 수 있는데다 기술의 발전이 이전 단계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PS. 추석 연휴에 빠지지 않는 것이 영화이다. 어린 시절 하루에 영화를 극장에서 두 편 볼 수 있었던 날이 추석과 설날이었다. 연휴와 두둑해진 주머니 덕분이었다. TV에서는 특선 대작이 넘쳐났다. 그러나 이제 '놓치면 후회할' 영화는 거의 없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임훈구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