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현의 '오늘, 그 사람' - 야구해설가보다 더 아꼈던 그의 직함, '올림픽 단장님'을 불러보며
8일 오전 야구해설가 하일성(68)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평생을 야구와 함께 했던 하일성은, 그가 해설을 하는 경기가 뒤집힐 때마다 한 "야구 몰라요"라는 말 같은 극적인 반전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사기 혐의로 불구속기소 돼 어려움을 겪던 하일성은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양키스의 전설 요기베라는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 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을 하일성은 그의 인생에서의 끝을 너무 서둘러 앞당겨버렸다. 삶의 무게가 9회 말 투아웃에도 포기하지 않던 야구인의 투지조차 짓눌렀을까. 그의 삶을 돌아봤다.
하일성하면 명쾌한 야구해설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의 해설로 야구를 배우고 야구의 재미에 눈을 뜬 수많은 팬들에게 그는 여전히 명해설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에서 야구선수로 뛰었다. 첫 직업은 체육교사였지만 1979년 동양방송 야구해설위원으로 전직했고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1982년 KBS로 옮겼다.
이후 해설가로 얻은 그의 명성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프로야구의 발전, 성장과 함께 그의 구수한 입담을 기억하는 사람도 늘었고 그는 명실상부한 야구해설 전문가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안긴 야구해설가보다 더 기억되고 싶었던 직함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 야구단 단장을 맡았고 금메달 획득에 일조했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때도 그는 단장을 맡았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었기 때문에 맡았던 자리였지만 그는 전 세계에 한국야구의 위상을 높인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총장 임기를 마친 뒤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대표팀 단장 시절을 꼽았을 정도였다. 나중에 세상을 떠나면 묘비에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야구대표팀 단장'이라고 새겨달라던 그의 말이 허망하게 죽음을 맞은 날 가슴 아리게 기억된다.
그는 2002년 심근경색으로 투병하고 3번이나 수술을 받으면서 죽음 문턱까지 갔었다. 병마와 싸움에서도 당당하게 일어섰던 그가 스스로 죽음의 길로 들어선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경찰은 최근 그가 사기 등의 혐의로 피소된 것이 요인으로 작용했는지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는 사람 아들을 프로야구단에 입단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지인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책을 보면 돈은 늘 그가 초연하고자 했던 대상이었다. 그는 '철학자 하일성의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라는 책에 새어머니의 부탁으로 아버지의 유산을 포기한 사연을 적은 바 있다. 그는 "내가 욕심을 부리고 유산을 탐냈으면 분명 잘못됐을 것이다. (중략) 멍청하게 굴다가 인생 망가질 대로 망가질 것 같아서 과감히 포기했다. 해설을 못 하게 되는 것이 가장 끔찍했다. 그때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라 생각한다"고 썼다.
야구는 홈에서 시작해 홈으로 돌아오는 경기다.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점수가 주어진다. 그는 이 야구의 규칙을 인생에 빗대 설명했었다. '인생은 1%의 싸움이다'라는 책에 그는 "인간은 흙에서 시작해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일상 또한 집에서 출근하여 다시 집으로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집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다. 투수의 견제에 결려 중간에 아웃되듯,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완성이요 행복이다"라고 썼다. 비록 완성이고 행복은 아니지만, 견제에 걸려 중간에 아웃이 된 것도 야구고 인생이다. 그가 돌아간 곳이 어디든 이제는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