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적힌 티셔츠 입고 우리 선수 경기 어김 없이 등장
아이돌 그룹 노래에 환호하며 춤…팀 만들어 공연도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외국인 응원단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구본찬(23·현대제철)의 금메달로 양궁 대표팀이 남녀 전 종목을 석권한 지난 13일(한국시간) 삼보드로무 경기장을 비롯해 여자 핸드볼이나 배구처럼 우리 선수들이 경기하는 곳에 어김 없이 등장한다. 이들이 입고 있는 하늘색이나 빨간색 티셔츠에는 '대~한민국'이나 '한류사랑 비바 코레이아(VIVA COREIA)'라는 글씨가 적혀있다.
이들은 한국을 사랑하는 '브라질리언' 모임이다. 주상파울루 한국 총영사관 한국문화원에서 홍보담당으로 일하는 정다운씨는 "상파울루에서 활동하는 '한류사랑'이라는 단체에서 많은 응원단이 한국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리우에 왔다"고 했다. 상파울루뿐 아니라 리우에도 적잖은 한류사랑 모임 회원들이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연령층이 다양하지만 대개 스무 살 안팎의 어린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브라질 응원단을 아우르는 구심점은 우리나라 대중가요인 '케이팝(K-POP)'이다. 코파카바나 해변에 있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관에서 지난 14일 케이팝에 열광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이들은 무대 앞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걸그룹 '여자 친구'나 남성 아이돌그룹 '세븐틴'의 노래가 나오자 크게 환호하면서 즉석에서 춤을 추고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글 가사로 모조리 외웠는지 빠른 랩이나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들도 거리낌 없이 해냈다. 케이팝과 안무를 따라하는 '커버 댄스(cover dance)' 팀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학생들도 있다. 9인조 여성 커버 댄스팀인 'B5'가 대표적이다.
자신을 리더라고 소개한 나탈리아씨(23)는 "리우에서 케이팝을 좋아하는 여성 멤버 중 특히 춤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만 추려서 구성한 팀"이라고 자랑했다. 이날은 일곱 명만 모였다. 이들은 "춤을 한 번 볼 수 있겠냐"고 묻자 거리낌 없이 걸그룹의 준비 동작부터 시작해 군무를 완벽하게 해냈다. 반주가 없어도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서 흐트러짐 없이 짧은 공연을 선보였다. 팀원인 에두아르다씨(18)는 "해변이라 움직임이 조금 부자연스러웠다"고 했다. 남성 다섯 명으로 구성된 '벡터스'라는 팀도 이곳에서 케이팝에 맞춰 공연을 즐겼다. 특별한 무대가 없어도 스피커에서 한국 가요가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루카스 올리베이라씨(19)는 "한국의 걸그룹은 물론 남성 팀들의 노래도 대부분 알고 있다"고 했다. 좋아하는 그룹을 묻자 '빅뱅'이나 '투애니원(2NE1)'부터 '방탄소년단', '유니크(UNIQ)' 등 국내 아이돌 팀의 이름이 줄줄이 쏟아졌다. 리우에 사는 베아트리시양(16)은 "한 때 팝송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케이팝이 훨씬 신나고 역동적"이라고 했다. 벡터스 멤버인 에두아르도씨(20)는 "삼바나 보사노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케이팝만의 흥겨움이 있다"고 했다.
브라질에서 케이팝이 관심을 끈 시기는 2013년부터다. 유튜브를 통해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불을 지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국내 아이돌그룹의 노래와 춤이 전파되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나탈리아씨는 "케이팝이 브라질 가요 순위의 최정상권은 아니지만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8월 1일 상파울루에서 개최한 콘서트에는 6000여명이 몰렸다. 공연을 보기 위해 이틀 전부터 텐트를 치고 입장을 기다리는 브라질 팬들도 많았다고 한다.
케이팝으로 촉발한 관심은 우리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문화로 확산하는 추세다. 베아트리시양은 "최근에 온라인을 통해 '태양의 후예'와 '응답하라 1988' 등을 모두 챙겨봤다"고 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송중기(31)를 언급하는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 리우에 사는 파울라양(18)은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온라인 공고를 보고 얼른 지원했다. 꼭 합격해서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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