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출'은 조기 출근의 준말이다. 홍보팀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애물단지다. '조출' 당번이 되면, 저녁 회식은 고문이다. "조출 좀 빼 주세요." 여장부 홍보맨이라도 밤늦게까지 회식을 마치고 새벽에 출근하는 일을 좋아할 리 없다. '조출'의 핵심은 뉴스 스크랩이다. 수 십 개의 오프라인 신문과 온라인 매체를 꼼꼼히 훑어봐야 한다. 최전방 수색대원 같은 눈빛으로 검색하다가 "이건 뭐야"라는 장탄식이 터져 나오면 큰일이다. 이쯤 되면 홍보팀장은 시어미 앞에서 꾸중 듣는 며느리처럼 윗분 얼굴 보기도 두려워진다.
누군가는 신문을 '가장 훌륭한 아침 밥상'이라고 하지만, 홍보팀에겐 두려운 식탁이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신문 이란 이름의 식탁'에는 어제와 같은 반찬을 용서하지 않는다. 전부 새 반찬이다. 먹기 싫어도 먹을 수밖에 없는 식탁을 독자들은 용케도 아주 섬세한 미각으로 가려낸다. 맛집과 맛 없는 집을 구분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판은 수 십 년을 쌓은 명성을 하루아침에 침몰시키기도 한다.
독자의 까다로운 식성 때문에 기업체 언론담당은 조용할 날이 없다. 기자들이 하루 종일 오감에 가슴을 더해 만든 날생선 같은 활자들이 잉크를 먹고, 가치를 순환시키면서 인간세상은 새 아침의 커튼을 여는 것이다.
커튼을 여는 순간 "참 좋은 회사에요"라는 활자를 만나면, 홍보맨의 얼굴은 만개하지만, 비판의 목소리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제대로 강한 피니시블로를 얻어맞은 날은 초죽음이다. 필명 기자의 얼굴이 꼴도 보기 싫어지기도 한다.
뉴스는 홍보맨의 짝사랑 대상이다. '어제는 죽고 못 살다가 오늘은 찬바람 씽씽 부는 겨울 한복판'으로 변한다. "두 번 다시 사랑하지 않으리"란 독백을 수도 없이 한다. 매일 아침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순간을 맞으면서 필요한 정보만 순식간에 골라 그룹 내에 전파해야 하는 홍보맨들은 또 하나의 맥없는 작업을 한다. 신문 스크랩, 복사작업을 하는 '조출'의 모습은 측은하다. 다른 부서 사원들이 커피 한잔 마시며 질 높은 업무를 구상할 때 대부분의 홍보맨들은 최고경영층이 출근하기 전에 일을 끝낸다.
이런 언론 환경에 고민거리가 더해졌다. 신생 매체의 탄생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6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새 매체의 탄생은 달갑지 않다. 대다수가 까칠한 기사로 명함을 내민다. 신생 매체와의 관계 모색은 경제적 지원을 담보로 해야 하지만 장치산업체는 PR광고도 거의 없으므로 그들이 내민 명함에 빈손을 얹어 줄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쉰 반찬의 재생들이다.
보도의 자유는 특권이 아니고 사회의 기본이라는 언론의 본질을 그들은 못 본 체한다. 정당한 비판은 새겨들어야 하겠지만 지성의 가르침도 없고 공익도 없는 기사가 애를 먹인다. 개인 사생활, 옛날 고릿적 이야기, 팩트(Fact)도 아닌, 무고한 이야기 등 지라시거리가 단골소재다.
"이래도 가만 있을래?"의 도를 넘어선 악의적 보도 태도가 만연한 사회는 죽은 기자의 사회이다.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가 지금 있었다면 "거봐 내 말이 맞잖아" 했을 것이다. 그가 남긴 말은 다소 거칠다. "모든 포학(暴虐)중에서 한심하고 비열한 것은 사이비 신문과 잡지의 포학이다."(일기)
김영란법이 9월이면 시행되지만 이런 세태가 얼마나 사라질지 정말 유감이다. 그래서 최근에 A그룹 총수의 사생활 노출과 관련된 언론 대응 태도를 지켜본 필자는 깊은 동지애를 느낀다. 묵시로 일관해 준 참언론의 태도에 진심으로 신뢰를 보낸다. '노출 협박' 앞에서 과감히 'NO'라고 했던 홍보맨의 결연한 용기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뉴스 속에서 활자가 웃어주고, 언론인들의 맑은 영혼을 만나는 날은 정말 행복하다.
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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