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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가 왜 이렇게 많지…니가 생각한게 제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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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 특별전

전시40일째 관람객 3만30명 방문
말년 열정 쏟은 작품 264점 최대규모
잭슨 폴락 그림에서 영감얻은 작품 인기


2차 세계대전·스페인 내전 겪은 현실
자연 소재 추상적 표현 통해 자유 꿈꿔

'무제가 왜 이렇게 많지…니가 생각한게 제목이야' 호안 미로 특별전(사진=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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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호안 미로의 그림을 보고 아이들은 '엄마, 얘는 새야, 달이야, 해야'라고 콕 집어 이야기해요. 그런데 어른들의 표정은 심각하죠. 슬그머니 저한테 물어들 보십니다. '이건 뭘 그린 건가요? 제목이 없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하죠?' 미로의 작품에는 무제(無題)가 많아요. 미로는 자신의 그림이 제목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기를 바랐죠. 관람객들이 좀 더 자유롭게 꿈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셨으면 좋겠어요."(미추홀아트센터 엄선용 과장)

지난 4일 '꿈을 그린 화가-호안 미로 특별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 갔다. 전시 40일째. 관람객 3만30명이 다녀갔다. 엄마 손 잡고 온 어린이들부터 20대 여대생, 삼삼오오 모인 노년의 여사님들까지 관객층이 다양하다. 전시를 기획한 미추홀 아트센터의 엄선용 과장(29)은 "목요일에는 직장인들을 위해 아홉시까지 개관한다. 일곱 시 특별 도슨트 시간도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미로는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술가다. 화려하고 명료한 색채, 자연과 인체를 상징화한 기호로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자주 '초현실주의 화가'로 불리지만 그의 작품들을 하나의 사조로 정의하긴 어렵다. 미로의 그림에는 야수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가 모두 스몄다. 대표작으로는 '어릿광대의 사육제', '항구' 등이 있다.


이번 전시는 미로가 1956년부터 1981년 사망할 때까지 세상과 단절하고 마지막 예술 인생을 불태운 곳,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서 탄생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아시아와 유럽을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미로 작품 전시다. 유화와 드로잉, 콜라주, 일러스트, 테리스트리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 총 264점을 선보인다.


'호안 미로 마요르카 재단'과 미로의 유족이 경영하는 '석세션 미로'가 힘을 모았기에 가능했다. 석세션 미로의 대표이자 미로의 손자인 호안 푸넷 미로는 북한의 남침을 우려해 전시 승인을 끝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무제가 왜 이렇게 많지…니가 생각한게 제목이야' 전시작 중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무제'(1974,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분필 270×355㎝)다. 1층 전시관 비상구 가까이에 걸려 있다. (사진=백소아 기자)


전시작 중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무제'(1974,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분필 270×355㎝)다. 1층 전시관 비상구 가까이에 걸려 있다. 재단이 소유한 작품 중 가장 큰 그림이다. 미로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특히 잭슨 폴락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 그는 무광 합성 에나멜 페인트로 바탕을 칠해 어둠을 표현했다. 사포질을 통해 더욱 신비스러운 어둠을 연출했다. 하얀 아크릴 물감을 바닥 청소에 쓰는 빗자루를 붓 삼아 자유롭게 칠했다. 폴락의 드리핑(물감을 캔버스 위에 떨어뜨리거나 붓는 회화기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미로는 이 작품을 무려 6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그렸다.


사실 이 거대한 그림은 하마터면 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할 뻔 했다. 1978년 개관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는 이 작품이 안전하게 들어갈 만한 큰 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 과장은 "기울여서 겨우 가져왔다. 이 그림이 저 작은 비상구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관람객이 깜짝 놀라곤 한다"고 했다.


'무제가 왜 이렇게 많지…니가 생각한게 제목이야' 관람객이 '석공' 앞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사진=세종문화회관)

미로의 문자와 그림이 담긴 '석공'(1981, 에칭, 아퀴틴트, 37×100) 역시 관객이 오래 머무는 인기작이다. 반은 문자, 반은 그림으로 이루어진 작품 열두 장이 한데 묶였다. 이 책은 연금술과 관련된 다양한 돌을 다룬다. 이 작품을 감상하던 관람객 김미연(34)씨는 "미로가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게 보인다"며 "현실과 추상의 오묘한 조합이 참 좋다"고 말했다.


'무제가 왜 이렇게 많지…니가 생각한게 제목이야'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림은 지하 1층에 나란히 전시된 '무제' 세 작품이다. 별칭이 '화투장'으로 흡사 흑백의 '팔' 피 세 장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백소아 기자)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림은 지하 1층에 나란히 전시된 '무제' 세 작품이다. 별칭이 '화투장'으로 흡사 흑백의 '팔' 피 세 장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 개관을 몇 주 앞두지 않은 시점에 재단에서 한국으로 전화가 왔다. 이 세 작품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립미술관에 먼저 빌려주기로 했는데 이를 잊고 있었다는 연락이었다.


엄 과장은 "독일까지 가서 다른 비행기에 실어 가져올 정도로 이 그림들이 가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직접 보는 순간 한국행 비행기에 태우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주 반갑고도 신기한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미로를 좋아하는 한국의 한 할머니가 프랑크푸르트로 여행을 갔는데 하루 차이로 전시를 놓쳤다고 한다. 한국에서 미로전을 한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도슨트 시간에 이 그림들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왔다는 사실을 듣고 너무나 반가웠다는 것. 엄 과장은 "그 우여곡절을 겪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미로의 그림은 천진난만하다. '땅의 찬미자'인 미로는 그가 태어난 카탈루냐의 해와 달, 바다와 하늘을 자주 그림의 재료로 삼았다. 자유를 상징하는 새 역시 단골 소재였다. 늘 행복했을 것 같지만 사실 미로는 많은 아픔을 겪은 미술가다. 제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상실의 고통을 맛보았고 하루에 무화과 몇 개로 버텨야 할 정도로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미로가 억압된 현실에 살았기에 그림을 통해 자유를 갈망하고 꿈을 꾸었다"고 본다.


미로의 그림을 보는 어린 관람객들이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 초등학교 2학년 꼬마가 배우 박해일이 들려주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미로의 그림을 진지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엄마 장유연(39)씨는 "아이가 색칠공부를 하다 미로의 그림을 알게 됐는데 참 좋아하더라. 우연히 미로의 전시가 열린다는 걸 알게 돼 찾아왔는데 지금 오디오 가이드로 들은 내용을 나한테 알려주는 참이었다"고 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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