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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나뭇잎을 생각하다 1/최원준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9초

  
 나무는 평등하다 피부색이나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나뭇잎을 나누어 준다 나뭇잎을 주우며 사람들은 나무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수천 년이 흐르고 세계는 오직 나무와 흩날리는 나뭇잎들로 가득한 곳이 되었다 누가 더 많이 나뭇잎을 주울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였다 나뭇잎을 가져가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으므로 어떠한 도구든 사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나뭇잎 줍는 방식에 따라 구분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나뭇잎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고 다른 누군가는 피 묻은 나뭇잎을 급하게 주머니에 집어넣기도 했다 그리고 몇 가지 사소한 문제들을 겪으며 이제 사람들은 나무는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나뭇잎을 믿고 나뭇잎을 사랑하고 나뭇잎을 위해 하루를 한 달을 일생을 보낸다


 

[오후 한詩] 나뭇잎을 생각하다 1/최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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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상상해 보자. 아침에 일어나면 떡갈나무 나뭇잎과 단풍나무 나뭇잎의 시세부터 따져 보는 세상, 나뭇잎을 보관하기 위해 크고 튼튼한 금고를 마련하고 나뭇잎으로 사람을 사서 지키게 하는 세상, 더 많은 나뭇잎을 모으기 위해 나뭇잎을 몇 상자씩 뇌물로 주는 세상, 나뭇잎을 많이 모은 사람이라면 그 과정이야 어찌됐든 일단 존경부터 받고 보는 세상, 나뭇잎을 많이 가진 사람이 나뭇잎을 적게 가진 사람을 경멸하는 세상. 다른 사람의 나뭇잎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나뭇잎을 모으기 위해 친구와 연인을 배신하고,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심지어 부모를 협박하기도 하는 세상. 오로지 '나뭇잎만 믿고 나뭇잎만 사랑하고 나뭇잎만을 위해 하루를 한 달을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 그런 세상, 나뭇잎이 생의 목적이 되어 버린 세상, 그런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말이다. 우리가 바로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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