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일본 현행 헌법 아래서 처음 즉위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생전에 퇴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일본의 일왕제도가 근대 이후 최대의 변화를 겪게 됐다.
일본 NHK는 13일 궁내청 관계자를 인용, 올해 만 82세인 일왕이 '살아있는 동안 왕위를 왕세자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퇴위의 주된 이유는 건강문제다. 아키히토 일왕은 69세였던 2003년에 전립선 암으로, 78세였던 2012년에는 심장 관상동맥우회수술을 받았다. 재활과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지난해 8월 전몰자 추도식에서는 추도사를 낭독하기 전 묵념 순서를 빼먹는 등 이상 신호가 발견되기도 했다. 일왕 부부의 노화에 대응하기 위해 궁내청은 2009년 일부 행사에서 일왕의 연설을 빼는 한편, 외국 귀빈 접견 횟수를 줄였다. 지난 5월에도 일왕 부부의 공무를 연 10건 줄이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역부족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왕이 생전퇴위 의사를 밝힌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닌 5년 전부터라고 전하기도 했다. 일왕의 차남인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왕자는 2011년 생일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왕의) 정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퇴위가 이뤄질 경우 왕위는 장남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물려받게 된다. 하지만 퇴위까지 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 메이지 시대에 제정된 구 왕실 전범과 세계 2차대전 이후 마련된 현행 왕실 전범이 일왕의 생전 퇴위를 금지하고 있어 국회에서 이를 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키히토 일왕이 퇴의 의사를 밝힌 데 대해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키히토 일왕의 부친인 쇼와 일왕까지 총 124대의 일왕 중 절반 가까이가 양위할 만큼 중세에는 양위가 빈번했으나, 근대에는 고가쿠(光格) 일왕(1780∼1817년) 이후 약 200년간 양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도 왕의 고령 등을 이유로 생전 퇴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36년 영국의 에드워드 8세가 평민과의 결혼을 이유로 퇴위했다. 지난 2013년에는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과 벨기에의 알베르 2세가 각각 즉위한 지 33년, 20년만에 퇴임 의사를 밝혔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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