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정현진 기자] 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연 1.25%의 기준금리 동결 선택은 예상된 행보였다. 한은이 바로 지난달 기습적으로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내렸기 때문이다. 닷컴 버블 붕괴 및 미국 9ㆍ11 테러가 겹쳤던 2001년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등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제외하고 한국의 기준금리가 2개월 연속 내려간 적이 없다. 2001년의 경우 7월부터 9월까지 3차례 연속 기준금리가 떨어졌고 2008년엔 10월9일 연 5.00%로 하락한 후 5회 연속 인하 행진을 이어갔다. 만약 한은이 경기 회복을 위해 이날 두 달 연속 금리 인하란 초강수 카드를 꺼내들었다면 시장의 충격은 역설적으로 커질 수 있다. 현재 경제 상황이 극단적인 과거 모습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지난달 깜짝 금리인하 후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도 동결 결정의 배경이다. 실제 기준금리를 인하한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부채는 전달보다 6조6000억원(주택금융공사 모기지론 양도분 포함)이 더 늘었다. 이는 매년 6월을 기준으로 한은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8년 이후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멈출 줄 모르는 가계부채 급증세에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지난달 사상 처음 500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또 기준금리를 내린다면 가계부채 화약고가 터질 수 있다. 금리인하를 단행한 6월 금통위에서도 이같은 우려는 있었다. 당시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확대가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의 최대 위험요인"이라고 걱정했다. 또 다른 금통위원도 "우리 경제 리스크로 가계부채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와 함께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정부가 마련한 20조원 규모의 재정보강 효과를 지켜본 후 추가 대응을 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 10조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포함한 총 20조원을 경기살리기에 쏟아붓는 재정보강 대책을 통해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0.25∼0.3%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15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회를 열어 정부의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에 관해 최종적으로 협의할 예정인 만큼 한은 입장에선 경기 흐름을 좀 더 지켜볼 여유가 생긴 셈이다.
녹록잖은 국제금융환경도 한은의 발목을 잡았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ㆍ브렉시트) 결정 후 세계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 경쟁을 벌일 태세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이미 브렉시트 결정 직후 금융ㆍ통화정책 완화에 시동을 걸었고 일본 역시 필요 시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26~27일 예정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도 변수다. 브렉시트 후 시장에선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이 지연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미 연준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공개된 6월 FOMC 의사록엔 "대부분 참석자가 향후 지표들이 경제성장 상승세를 확인해 줄 경우 심각한 경제ㆍ금융 충격이 없는 한 연방기금(FF) 금리 목표치 인상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기재돼 있다. 미국 연방금리를 결정하는 FOMC는 올해 7월과 9월 11월 12월 총 4차례 남았다. 결국 기준금리(1.25%)가 거의 한계점에 근접한 현 상황에선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게 득보단 실이 많을 것으로 여긴 것이다.
이번달 기준금리는 동결됐지만 향후 추이는 예단하기 어렵다. 앞으로 국내 경기가 수출 부진 등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진행으로 대량실업이 발생할 경우 이 역시 금리 하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주열 총재가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 접근하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며 물가관리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도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를 예상케 하는 요인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현재로서는 변수가 많아 시기나 횟수 등을 예측할 수 없다"며 "브렉시트 효과가 진정되면서 경기 분위기가 다소 밝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만약 수출 둔화와 경기 위축, 브렉시트의 추가 충격 등이 생기면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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