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가수가 관객을 상대로 무대에서 노래를 해요. 그런데 관객이 가수의 음원을 사지 않아 회사가 음원 수입을 얻지 못한다면, 그래서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한다면 회사는 더 이상 가수를 무대에 세우는데 돈을 쓰지 않게 되겠죠. 지금 애널리스트들의 상황이 딱 이래요. 주식시장 분위기가 안 좋아 증권사들이 제대로 수익을 못 내니 리서치센터 규모를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안지영(사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5~6년 전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예전에는 애널리스트들이 '증권사의 꽃'으로 불리며 스카우트 대상 선두에 있었지만, 지금은 몸값이 비싸지면 행여나 내쳐질까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는 "애널리스트들이 대우 받던 시절에는 애널리스트 한 두명 당 보조 애널리스트(RA)가 한명 씩 붙어 도움을 줬지만, 최대한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지금은 애널리스트 네 명 이상에 한 명의 RA가 붙을 만큼 상황이 열악해졌다"며 "게다가 최근 증권업계에 인수ㆍ합병(M&A)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리서치센터 내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졌다"고 설명했다.
안 연구원은 지금의 애널리스트들이 완전한 '을(乙)'의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증권사로 인해 인력은 줄고 커버해야 하는 기업 수는 늘어 예전보다 더 바빠졌지만, 분석 대상인 기업과 운용사의 서로 다른 니즈를 조율해가며 다리 역할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소신' 분석을 내놓기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연구원은 애널리스트란 치명적인 직업 매력에 빠져 지금도 여전히 일을 즐기는 중이다. 안 연구원은 "16개 기업을 커버하면서 매 분기 실적 발표 전후로 일이 몰릴 때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업에 대한 예측이 맞아 떨어졌을 때 내가 제대로 분석을 했구나 하는 만족감과 성취감 때문에 이 일을 즐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리서치센터 대부분 업무 강도가 세고 남성 위주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만, 운좋게도 여성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내수 부문, 화장품ㆍ유통 섹터를 맡고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일을 즐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 연구원이 화장품ㆍ유통 섹터 분석을 잘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잠시 CJ홈쇼핑 IR담당업무를 하며 현장감을 익혔던 경험 덕이 크다. 그는 "기업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 증권사, 투자자의 입장을 두루 이해하는게 중요한데, 과거 IR 업무를 통해 익힌 현장감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애널리스트들은 기업 분석을 할 때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들여다볼까. 안 연구원은 한국과 외국계 증권사가 중점을 두는 부문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애널리스트들은 기업 주가수익비율(PER)에 무게중심을 많이 두는데, 손익에 초점을 맞춰 기업을 분석하는 트렌드가 형성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업 성장 속도가 워낙 더디다 보니 리서치센터에서도 PER 보다는 자기자본이익률(ROE)에 초점을 맞춰 분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전했다.
안 연구원은 중장기 전망을 제대로 하는 애널리스트가 좋은 애널리스트란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실제 업계에서는 고객사인 자산운용사 등 기관들이 '사고 팔고'를 할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굴곡진 분석을 잘하는 애널리스트들이 호평 받는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증권사 입장에서도 고객사가 주식을 자주 사고 팔아 수수료 수입을 안겨줘야 웃을 수 있다"면서 "애널리스트들이 계속되는 주식시장 악조건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단순히 기업 분석 업무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업ㆍ산업 분석을 접목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증권사가 새로운 고객군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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