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車·조선 등 주력산업 정체… 신기술·신시장 '혁신'이 미래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제조업 강화', '미래리더십 확보', '투자 확대'… 10년전 국내 산업계가 강조했던 핵심 어젠더. 산업계의 빠른 서비스화, 정보화에도 제조업의 중요성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던 시기다. 이후로 10년, 지금의 산업계 역시 제조업과 투자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달라진 것은 제조업이 디지털 빅뱅과 맞물려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라는 새 장애물을 만났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만한 뾰족한 방안을 찾기 어려운 시점에서 지난 10년을 통해 다가올 10년을 찾아본다.
◆10년 전 산업계 "투자를 늘려라"= 2006년 국내 산업계는 앞서 3~4년간 지속돼 왔던 낮은 경제성장률을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았다. 당시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부실 요소로 지목된 가계부채와 중소 제조업들의 자생력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화됐다. 산업자원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연구원 등이 서둘러 투자 전략과 투자활성화 방안을 제시하고 나선 것도 이때문이다. 2006년 9월 산업연구원의 투자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 부진의 근본 원인은 미래투자에 대한 불확실성과 투자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족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5% 성장과 201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5000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10대 주요 산업의 시기별 투자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동차, 조선, 일반기계, 철강, 석유화학 등 10개 주요 산업의 단기(2010년) 및 중장기(2015년) 투자 유망 분야를 지정하고 육성 전략을 제시했다. 단기적으로는 경쟁력을 보유한 주력 제품의 지속적인 생산과 신제품 개발, 생산설비 확충 차원의 투자가 꼽혔다. 중장기적으로는 미래 기술발전 추이와 국내외 관련 산업의 수요 등 새로운 수요 여건 변화를 고려한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부품ㆍ소재, 자본재의 국산화도 당시 지적된 사안이다. 수입 자본재에 의한 설비 투자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을 경우 제조업 강국이 될 수 없음이 강조됐다. 당시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은 "연구개발의 절대적 열세도 가장 큰 문제"라며 "미래형 자동차, 선박 등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개발과 투자를 미리해야 선두대열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성장 늪에 빠진 지난 10년=지난 10년간 산업계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의 모습은 10년 전 그리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4%는커녕 3%도 못 미치고 성장 속도는 중속에서 저속으로 떨어졌다. 중국의 가격과 일본의 기술에 끼인 넛크래커는 중국의 기술과 일본의 가격에 치인 역넛크래커로 달라졌다. 강세를 보이던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철강, 해운, 석유화학 등은 저성장과 저유가, 고령화와 고비용에 막혔다. 2008년과 2010년 두 번의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체력이 바닥난 결과다.
지난 10년간의 가장 특징은 산업 수출 비중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전체 수출 대비 10대 산업 수출 비중은 1980년 55.9%에서 2014년 86.3%로 크게 확대된 반면 산업 구성을 살펴보면 정보기술(IT), 수송기계, 기계, 철강제품 화학 관련 산업들로 큰 변화가 없다. 시기별 30대 품목 변화도 2010년 이후에는 3개 품목에 불과하다.
반면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27.0%, 일본의 23.3%, 독일의 22.3% 정도 수준에 불과해 경쟁력은 더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산업의 노동생산성을 시기별로 보면 1980년대 5.18%, 1990년대 4.00%, 2000년대 2.42%를 기록해 낮은 추세를 보였다. 이같은 추세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와 유사하다.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이 밀집한 울산 제조업종의 경우 50대 이상 비중이 28%로 전국 평균을 넘었고 제조업 중 자동차와 조선 등 조립가공업은 50대 이상이 무려 30%에 이르러 전국 평균보다 10% 포인트나 높았다.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2010년 이후 3% 수준에서 정체됐다. 주요 경쟁국인 중국 12.4%, 독일 7.7%, 일본 3.6%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 상품 수도 2009년 73개에서 2013년 65개로 감소했다.
◆10년 후 산업계, 다시 또 '투자'= 지난 4월 국내 산업계는 5~10년 후 우리 산업이 나아갈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신산업 민관 협의회'를 발족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공동 의장을 맡고 각계각층 대표 33명이 참여한 전례없는 규모의 협의체다. 이들 목소리는 또다시 '투자'에 수렴됐다. 기업 대표를 맡은 박용만 회장은 "기업은 창조와 혁신으로 신기술 개발, 신시장 개척, 핵심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를 적극 개혁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미래 성장을 위한 핵심을 꼬집었다.
향후 10년간 산업계가 투자에 나서야할 핵심 기술도 언급됐다. 글로벌 경영컨설팅 전문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한국 경제의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빅데이터와 분석 ▲자동화 로봇 ▲시뮬레이션 ▲수평ㆍ수직적 소프트웨어 통합 ▲산업인터넷 ▲사이버 보안 ▲클라우드 ▲3D 프린팅 등 적층 가공 ▲증강현실 등의 혁신 기술을 대표 항목으로 꼽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이 기술들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반 요소지만 이들 각각의 요소보다 그 조합이 만들어낼 임팩트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형 4차 산업혁명은 개별기업과 산업, 정부 3대 주체가 함께 견인해 나갈 과제"라고 밝혔다.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신성장 동력 육성을 위한 컨트롤 타워 확립, 신성장 동력 육성 관련 법 제도의 정비 등을 통해 국가 차원의 신성장 동력을 육성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기존 산업은 기존의 경쟁력 제고 노력을 지속하고 정부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구조조정 지원 등을 통해 산업 경쟁 기반의 조속한 회복을 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융합 등 산업 패러다임 변화로 새롭게 부상되는 미래성장동력 분야에 대한 선제 투자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지속성장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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