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아동인권 침해국 명단에서 제외한 것을 두고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사우디를 제외한 것은 반 총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반 총장을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 총장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사설을 쓴 것이다.
CNN에 따르면 사우디가 이끄는 동맹군들은 지난해 3월부터 예멘에서 후티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작전에 돌입했다. 군사작전 과정에서 지난해 예멘에서 1953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됐는데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이 중 60%는 사우디가 이끄는 동맹군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은 이어 지난달 사우디 주도의 동맹군을 아동인권 침해국 명단에 올렸다.
하지만 사우디가 유엔 공여금을 내지 않겠다고 반 총장을 압박했고 이후 사우디는 아동인권 침해국 명단에서 빠졌으며 반 총장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우디의 압박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했다. 당시 반 총장은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나라가 유엔에 분담금을 철회했을 때 다른 아이들의 인권에 미칠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반 총장이 사우디의 압력에 굴복했다며 일제히 반 총장을 비난했다.
하지만 NYT는 사설에서 "반 총장이 사우디의 압력에 굴복한 것은 괴롭기는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놀라운 것은 반 총장이 이를 공개하고 (사우디의) 압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유엔 주재 사우디 대사인 압달라 알-무알리미는 사우디가 유엔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에 대해 사우디의 명성을 해하려는 이들이 만들어낸 헛소문일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NYT는 "유감이라면 사우디가 반 총장을 그런 고약한 처지로 내몰았다는 것"이라며 유엔 내부의 모순과 회원국들의 이해충돌을 비판했다. NYT는 유엔이 인권 문제에서 위선적 태도를 보여왔다며 인권 침해로 비난받는 국가들이 돌아가며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을 맡았다고 지적했다. 사우디도 현재 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NYT는 전날에도 유엔 사무총장의 '권한의 한계'를 언급한 기사를 실었다. NYT는 "역대 유엔 사무총장은 크건 작건 회원국들의 강력한 정치적 압력에 자주 직면했다"며 특히 위험회피형(risk-averse)인 반 총장은 반 총장의 재임기는 '불편한 타협(awkward compromises)'이 많았던 기간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거 유엔 특사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어린이 인권침해국 명단에 올릴 것을 권고했으나, 반발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강한 로비로 결국 양국 모두 명단에서 빠졌던 사실을 언급했다. 반 총장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려다 미국의 반발에 부닥친 적도 있었다. 유엔은 2014년 1월 시리아 내전종식을 위한 국제평화회담에 이란 정부를 초청했으나, 미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하루 만에 초청을 철회했다.
NYT는 또 "차기 유엔 수장을 사실상 뽑는 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의 다수가 강력한 사무총장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그들 역시 독립적인 사무총장 선임을 회피해왔다"고 꼬집었다. 상임이사국 모두 결국 자신들에 고분고분한 사무총장을 원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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