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충무로에서]쓰는 이의 형벌

시계아이콘01분 48초 소요

[충무로에서]쓰는 이의 형벌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AD

우리나라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실 더 큰 상에도 손색이 없는 작가입니다. 이번 수상작은 '채식주의자'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년이 온다'가 더욱 강렬하게 기억됩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기억되기 위해 씁니다. 그러나 모든 글 짓는 이들에게 기억은 축복과 동시에 저주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책으로 꼼꼼히 기록된 글뿐 아니라 짧은 글도 영원히 기록되고 기억됩니다. 인터넷이라는 무한 기억두뇌 덕분입니다. 검색 한 번이면 수십 년 전의 글도 바로 '소환'됩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끔찍한 희생에 대해 국민 모두가 알게 된 지금, 한 화학자의 몇 년 전 글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지금 그 누구보다도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함을 비판하고 있는 그는 기실, 정부가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경고했을 무렵 그것이 비과학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 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판매금지는 진행되었고, 따라서 그의 글들이 어떤 현실적인 악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라지만 지금과 당시의 논조를 비교하면 씁쓸해지는 대목이 좀 있습니다.

최근 로스쿨 입시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사시존치 주장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을 이끄는 법학자들 가운데 과거 로스쿨 도입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던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면서 발견된 문제점들로 인해 입장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한때는 도입을 앞장서 주장하고 이제는 폐지를 주장한다면 적어도 그러한 변화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공감합니다.


상상도 하기 힘든 거액의 수임료와 광범위한 로비의혹으로 얼룩진 이른바 전관파동의 한 중심에 선 변호사가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문학판사'라고 불리면서 좋은 글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 특히 '행복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만족감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내용의 글로 법원으로부터 문예상을 받기도 했다는 소식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그런 글을 믿고 그에게 찾아간 의뢰인들도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듭니다.

문학판 언저리를 배회하던 시절, 존경하던 작가를 만난 다음 글 값에 크게 못 미치는 인품에 놀라고 상처 입은 적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좋은 글이 반드시 좋은 사람에 의해서만 쓰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에 관해 쓴 글은 사회적 파급효과라는 점에서 문학작품과는 구별되는 점이 있습니다. 의사결정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의 복잡한 쟁점들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려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쟁점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전문가로서의 판단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이들이 사실을 부분적으로 설명하거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을 바꾼다면, 사회적 합의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습니다. 4대강, 광우병, 세월호,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문제들 앞에서 우리 사회가 심각한 갈등을 겪은 데에는 이른바 전문가들이 내놓은 말과 글이 다른 요인에 의해 오염되었던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라기보다는 특정한 이익집단의 대변자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전혀 믿고 싶지 않지만,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연구가 조작되었다는 설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전문가의 타락을 상징하는 엽기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도 이런 반성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습니다. 편견에 사로잡혀 키보드를 누른 일이 없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다시금 되새겨봅니다. 이제 모든 글은 영생을 얻을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쓰는 자는 기억이라는 형벌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