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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의 '야상곡'을 듣는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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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과 감각 - 노래 하나가 꿈틀거리게 하는 '계절의 황홀'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오월의 밤엔 김윤아의 '야상곡'이 제격이다. 오래된 노래이지만, 봄처럼 늘 돌아오는 노래이다.


우리는 돋는 꽃을 보고 경탄하고 지는 꽃을 보고 아쉬워하지만, 그저 인간의 눈길로 그걸 바라볼 뿐이다. 야상곡은 어쩌면 꽃의 비명소리를 인간의 언어와 노래로 번역한 것이라 할 만하다. 오월 어느 밤에 후두둑 지는 꽃은 대체 무슨 말을 하며 지고 있는 것일까. 보는 사람이야 여러 꽃을 보는 것이기에 무심해지기 쉽지만 지는 꽃이야 한 생애 한 목숨을 타고나 스러지는 딱 한 번의 길이기에, 어마어마한 공포와 슬픔일 것이다.

그 꽃이 기다리는 것은 나비로 상징되는 움직이는 누군가이다. 제 몸이 스스로 달려나가지 못하고 누군가가 와서 몸 속에서 일어난 찐득찐득한 사랑을 전해줘야 하는 그 전신불수의 연애. 그런데 나비란 부박하고 무심하며 바쁘고 혼란스럽다. 잠깐의 풋정이라도 오월 꽃에게는 하늘의 천둥같은 것이지만, 그것인들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윤아는 그 애타는 밤의 환장할 마음을 노래로 담아낸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꽃잎은 나의 마지막 봄날이다. 그게 간댕간댕 나부끼고 있다. 언젠가 한번 다녀가신 어떤 사람은, 분명 봄날 다 가기 전에 다시 온다고 말했건만, 통 감감소식이다. 이러다가 꽃잎 다 지겠다. 지고나면 그 뿐일 사랑, 너무 늦게 와서 그가 애통해하지 않을까. 오실 마음을 당겨, 지금 오시게 해야 하는데, 내 그리움의 장력으로는 그를 당기지 못한다.

김윤아의 '야상곡'을 듣는 봄밤 '야상곡'이 들어있는 김윤아의 앨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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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는가. 벌써 오월 늦봄의 밤이 아닌가. 이대로 이 사랑 끝내야 하는가. 연착하는 사랑과, 흘러가는 시간이 피를 바작바작 마르게 하는, 그 늦봄의 밤. 이용이 이별을 회억하는 노래로 시월을 붙들고 있다면, 김윤아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랑을 그리워하며 늙어가는 제몸을 껴안는 애련의 창법으로 이 오월을 붙든다. 하지만 둘 다 사랑은 부재중이며, 어쩌면 우린 내내 부재중인 사랑을 앓아가면서 늘 그 마지막 날을 안절부절의 상태로 만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코끝에 감도는 '아직 남은 님의 향기'와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은, 그 마지막 날까지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깊고깊은 최면이다.


오월이든 시월이든, 마지막 날은 오게 마련이지만, 그 후에도 대개 사랑은 계속된다. 사랑이 제 풀에 너절해지고 권태롭고 사소해질 때까지, 사랑의 충동은 계속되는 법이다. 어쩌면 저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말들은, 아직도 완전히 절망하지 않은 시절의 독백들일지 모른다. 어쩌면 저 마지막이라는 드라마틱한 힘을 활용하여, 희망없는 사랑을 타개하려는 몸부림인지 모른다. 진짜 절망한 사람이라면 절망한 내부를 드러내지도 않을 것이다.


꽃잎 지는 날은 약간 '오버'하는 것도 괜찮으리라. 청춘의 불완전연소 같은 이 마지막 노래를, 늦봄의 밤에 들어보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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