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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에세이]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있다 생각하고 영화 '허삼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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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보면, 잊지못할 장면 하나가 나온다. 몹시 주린 가족이 요리를 상상하며 마음식사를 하는 것이다. 동생은 형이 제 요리가 아닌데도 침을 삼켰다고 아버지에게 이르기도 한다. 먹고싶은 것을 상상하는 일로 허기를 달래던 시절이 불시에 되살아나 짠해지던 풍경이다.

고려 초기의 뛰어난 학자였던 최충((984-1068, 혹은 조선조의 최항의 작품이라는 사람도 있다)이 남긴, 짧은 시(絶句)는 그에 버금가는 인상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滿庭月色無烟燭 만정월색무연촉
入坐山光不速賓 입좌산광불속빈
更有松絃彈譜外 갱유송현탄보외
只堪珍重未傳人 지감진중미전인

뜨락에 가득한 달빛은 연기없는 촛불이요
들어와 앉은 산의 빛은 급하지 않은 길손이라
여기에 소나무 거문고가 있어 악보에 없는 연주를 하니
다만 보배처럼 귀중히 여길 뿐 사람들에게 전할 수는 없구나


가지고 있는 것은 뜨락에 가득한 달빛과 들어앉은 산의 광채와 소나무와 바람소리 뿐이지만, 마음에 누리는 것은 아름다운 촛불과 느긋하게 들어앉은 벗과 멋진 거문고와 그것이 연주하는 콘서트이다. 가지고 있는 것이 진짜인가 마음이 누리는 것이 진짜인가. 마음이 누리는 것이 진짜이지만 사람들은 현실로 누리는 것을 진짜로 치니 이 기쁨을 어찌 전할 수 있겠는가.


소박을 소박으로만 아는 자는 소박하지 않다. 소박이 기껍고 간소함이 풍요로워야 진짜 '없음'이 환해진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상상의 요리를 하는 허삼관의 절박함이야 그것대로 애처롭고 아름답지만, 세상의 많은 허기들을 허기로 여기지 않고 모두 풍요로 번역해내는 마음의 두터운 '번역시스템'이야 말로, 인생을 더할 나위 없게 하는 재력이라는 것을, 저 옛사람은 말해준다. 저 달밤 산중의 콘서트를 잘 즐기셨는가, 그렇다면 그대도 마음 재력가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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