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은 '산은 코코본드 인수' 카드 꺼낸 까닭…구조조정 속전속결 의지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정부가 산업은행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 발행을 통해 구조조정 실탄을 마련하려는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다른 선택지보다 신속한 자금 투여가 가능하다. 한국은행의 산업은행에 대한 현물 출자나 산업금융채권 인수는 '한은법'이나 '산은법' 개정이 필요하다. 일정한 시간과 절차가 소요된다. 한시가 급한 구조조정에서 자칫 실기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현재 국책은행에 중요한 것은 '유동성 공급'보다 '건전성 확보'란 판단이 깔려있다. 당장 국책은행의 채권을 늘려주기보다는 국제 규정상 '자본'으로 인정받는 코코본드를 발행해 건전성부터 지키겠다는 것이다. '선(先)건전성확보, 후(後)유동성 공급'의 절차로 구조조정의 효율성을 꾀하겠다는 복안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설명도 다르지 않다. 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언론사 부장단 간담회에서 "한은이 시장에서 (코코본드를) 매입하는 방안은 현행 법률상으로도 가능하며 인수 방법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우선 산은의 건전성확보를 위해 코코본드를 한은이 사도록 해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이를위해 산은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상 유통시장에서 한은이 산은의 코코본드를 인수하는 건 전례는 없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한은은 금융 시장 안정 및 통화량 조절 차원에서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시중의 채권을 매입하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들의 의결만 있으면 가능하다.
임 위원장은 "발권력 동원을 포함한 유동성 공급 문제에 대해선 향후 기획재정부와 한은이 차근차근 논의해 합의를 도출하면 될 것"이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코코본드는 평소엔 채권처럼 사고팔 수 있지만 은행의 재무건전성이 나빠지면 주식으로 바뀌는 채권이다. 국제 규정상 '자본'으로 인정받아 산은의 재무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현재 산은과 수은의 조선, 해운업 관련 대출은 20조 원이 넘는다. 국내 금융권 조선, 해운 여신의 60% 이상이 몰려 있어 자본 확충 없이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말 현재 산은과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각각 14.2%, 10.0%이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손실이 불어나면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BIS 비율이 떨어지는 등 건전성이 악화되면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해진다.
다만 한은이 시중에 나온 코코본드를 시장에서 매입하는 것과 산업금융채권을 인수하는 것은 결이 다르다. 한은이 산금채를 인수하려면 현행법상 정부의 지급보증이 필요하고 국회 동의나 추가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 지급보증에는 정부가 직접적으로 돈을 지출할 필요는 없지만 시간과 절차가 소요된다.
정부가 이런 구상을 하는 데에는 '속전속결'로 구조조정을 치르겠다는 의지가 반영돼있다. 시간이 적게 드는 코코본드 발행부터 시행하고, 시간이 걸리는 유동성 공급은 차차 실현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임 위원장부터 나서 한은에 강한 압박을 가하며 구조조정 실탄을 마련해달라며 강수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임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기업 구조조정은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문제는 한은이다. 한은은 사안의 시급성과 명분을 놓고 원칙론을 내세우며 당국과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ADB(아시아개발은행)연차총회 참석차 독일로 떠나기 직전 간부회의에서 "기업구조조정과정에서 한은의 역할을 적극 수행하겠다"며 "국책은행 자본확충협의체에서 충분히 논의해달라"고 한은 간부들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윤면식 한은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는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설명회를 통해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라며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려면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속내가 이 총재의 원론인지, 윤 부총재보의 각론인지에 따라 구조조정의 큰 그림은 다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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