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기록된 그날의 기억...이상호·안해룡의 '다이빙벨'부터 김동빈의 '업사이드 다운'까지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2014년 4월16일,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싸늘한 시체로 가족 품에 돌아갔다. 아홉 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희생을 애도했다. 거리로 나와 촛불을 밝혔고, 노란 리본을 달았다. 2년이 흘렀다. 사고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스마트폰, 네비게이션 등의 범람으로 쉽게 접하고 잊히는 시대. 언론마저 조용해 기억 너머 진실은 외면당한다.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조사는 7개월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공식 활동은 6월30일 종료된다. 세월호가 인양돼도 핵심 증거를 수집할 수 없다. 선체가 증거보다 아픔의 기억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커졌다.
카메라는 그렇게 사라져가는 기억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기록영화(다큐멘터리)로. 객관적으로 사실을 기술하지만 단순한 전달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연출자의 주관적 해석에 기초해 컷이 배열된 일종의 이야기이자 목소리다. 현실을 보여주는데 그치더라도 그에 따른 변화가 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 감독 정지영(70)은 "어떤 정서를 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영화에는 어느 정도 정치적인 면이 들어간다. 그것이 상영돼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치 않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이상호(48)의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부산시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61)과 전현직 사무국장이 검찰에 고발되고 갈등이 고조되면서 영화제는 올해 개최 여부마저 불투명해졌다. 이 영화는 세월호에 대한 다양한 의문을 제기한다. 구조하지 않는 해경, 책임지지 않는 정부, 거짓 언론 등이다. 이 감독은 "팽목항 현장에 도착해서야 진실과 마주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사건이 국민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영화를 통해 보도되지 않은 사건의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뒤이어 개봉한 김진열(42)의 '나쁜나라'는 비통함으로 가득하다. 진상 규명을 위한 유가족의 투쟁을 1년 동안 함께 한다. 영상은 다소 투박하지만 이를 통해 드러나는 정부와 정치인의 무능함과 권위의식을 매섭게 꼬집는다. 프로듀서 안보영은 "처음부터 유가족을 타자화, 대상화되는 사회적 약자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주변에 존재하는 대상들의 이야기를 한 것뿐"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개봉한 '업사이드 다운'은 자녀를 잃은 아버지 네 명과 전문가 열여섯 명의 인터뷰로 한국사회의 병폐와 구조적 모순을 되짚어본다. 참사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자세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제작자들은 "비상식적인 사회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기록하고자 기획했다. 특히 아픔을 품어주고 위로해야 할 나라 안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앞선 세월호 관련 영화들에 비해 분위기는 차분하다. 아버지들이 눈물을 흘리려는 찰나에 다른 영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런 사고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이자 경고다.
세월호는 2002년 이후 안전검사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과적운행을 해 1년에 29억원을 챙겼다. 선장 이준석(71)은 사고 발생 직후 청해진해운과 보험처리, 과적화물 책임 등에 대한 통화를 했다. 전문가는 없었다. 선원스물아홉 명 중 열다섯 명,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 열일곱 명 중 열두 명이 비정규직이다. 해경을 해체한 정부는 여전히 진위를 파악하지 못했다. 유가족에 대한 보상도 감감무소식. 유가족이 요구한 적 없는 특례입학을 거론해 상처만 줬다. 영화 속 아버지들은 한목소리로 토로한다. "자기 자식이 당해도 이렇게 하겠어? 보상 같은 건 신경 안 써. 여당, 야당도 모르고. 애가 죽게 된 이유만 알고 싶다고." 이들은 진상을 규명 투쟁을 벌이면서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뒀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 동료들에게 계속 피해를 줄 수는 없잖아."
이 영화는 말미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뉴스를 넣었다. "국민 불안이 증폭되는 가운데 민간의료전문가들은 국민이 느끼는 공포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등을 겪고도 예방에서 계속 허점을 보인다.
공정식 코바범죄연구소 심리학박사(50)는 "대다수 국민이 고통을 공감하면서도 어느 정도 지속되면 벗어나기 위해 회피한다"며 "정치, 경제 등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논리로 화제를 계속 돌린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고는 일시적 이야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타성에 젖어버리면 웬만한 사건에 놀라지 않게 된다. 보다 확실하고 파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60)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295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마디와 대치된다. "가만히 있어라." 대중의 기억에서는 이미 지워졌을지 모른다. 남았다고 해도 생명력은 점점 짧아질 것이다. 그래도 소멸해서는 안 된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우리 시대와 동행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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