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느 때 처럼 여·야 모두에 '공천학살'이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비박(非朴)계, 더불어민주당은 친노(親盧)계를 중심으로 현역의원 들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한 가운데, 정권·당권의 부침에 따라 무한반복된 공천학살의 역사에 관심이 모인다.
공천 학살이 인위적 공천배제를 뜻하는 용어로 굳어진 것은 지난 2000년대 초반이다. 공천 학살이 나타난 이유로는 삼김시대(三金時代) 이후 보스정치가 마무리 되면서 각 정파가 각 정당의 권력을 분점하는 상황이 초래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권·당권이 교체 될 때마다 상대정파를 정치적으로 숙청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혐오정서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장기불황이 계속되면서 정치혐오가 커지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은 임시방편 식의 '물갈이'로 대응에 나서게 된 것이다.
우선 공천학살의 효시로 불리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000년 16대 총선 당시 5공화국 시절부터 '킹메이커' 역할을 하던 당내 거물 허주(虛舟) 김윤환(1932~2003) 전 의원, 이기택 전 민주당 대표(1937~2016), 을 포함해 모두 43명의 현역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당내 중진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면서 이 전 총재의 당내 장악력을 강화함은 물론 '개혁공천'의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도 인적쇄신 여론이 커졌다. 한나라당 처럼 인위적인 공천학살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젊은 피 수혈론'을 통해 386세대를 대거 등용하면서 세대교체의 서곡을 울렸다. 15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김민석 민주당 대표, 16대 총선에 도전한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이인영 의원, 오영식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2004년 총선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 발(發) 정계개편이 세대교체를 촉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여권에 인위적인 인적쇄신이 나타난 것이다. 그 결과 17대 국회에서는 이른바 '탄(핵)돌이'로 불리는 386세대들이 전면으로 부상했고, 구 여권의 중심을 차지하던 동교동계·구민주계 등은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다.
2008년 이후로는 현재의 여권이 공천학살을 주도했다. 이후의 공천학살은 주로 대권·당권의 향배에 맞물려 있었다. 2007년 대선에서 여권의 주류로 부상한 친이(親李)계는 2008년 총선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이른바 친박계 인사들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했다.
당시 비주류를 상징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로 공천학살을 비판했고, 탈당한 친박세력은 각기 친박연대·친박 무소속연대를 꾸려 총선에 나섰다. 결국 여당인 한나라당은 과반을 가까스로 넘었고, 급조된 친박연대는 13석을 차지하는 등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19대 총선은 친박주도의 공천학살이 이뤄졌다. 당시 당권을 접수한 친박은 이재오 의원 등 일부를 제외하고 친이계를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당의 대오를 재정비한 것이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인적쇄신에 다소 소극적이었고, 결과적으로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예상을 크게 뒤엎고 승리를 거뒀다.
이처럼 2000년 이후 매 선거마다 물갈이가 이뤄지며 국회 초선의원 비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16대 40.7%던 초선의원 비율은 18대 44.8%, 19대 49.3%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이같은 큰 폭의 인적쇄신이 우리 정치의 질(質)을 높였는지는 미지수다. 열린우리당발 정계개편과 탄핵역풍이 맞물려 초선의원 비율이 60%대에 이르렀던 17대 국회는 '108번뇌(초선의원 108명)'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혼란이 극심했고, 18~19대 국회도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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