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크라우드펀딩으로 재기 나선 고대앞 명물 '영철버거' 대표 이영철
후원금 7100여만원 힘입어 새출발 … 멘토로 힘돼주겠다 각오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요즘 청년들은 너무 머리로만 사는 것 같아. 똑똑한데 가슴이 없고 개인주의가 심해. 그런데 이게 또 그들만의 잘못은 아닌 게, 이 시대가 그들을 그렇게 몰아가는 것 같거든. 많은 학생들이 나를 세상 밖으로 다시 꺼내줬듯 이젠 내가 그들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어."
고려대 명물 '영철버거' 대표 이영철(48)씨가 사업재기에 도전하는 각오와 함께 올해로 꼭 17해째 대학생 새내기들을 만나는 소감을 전했다. 또 그가 가게를 새롭게 시작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태준 수많은 고대 재학생과 졸업생, 주민들에게도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15일 이 대표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 4학년을 끝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며 "그런 나에게 고대생과 직장인 등 수많은 젊은 손님들은 배움을 자극하는 '멘토'이자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어린 학생들은 경계심이 많고 혼자 있는 걸 즐기는 부류가 많아 소통이 더 어려워졌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가 친척에게 빌린 돈으로 버거 포장마차를 시작한 건 2000년 9월. 1000원이라는 부담 없는 가격과 질 좋은 재료, 청결한 위생 등으로 단숨에 손님들을 끌어 모은 그는 그해부터 나날이 승승장구해 가맹점이 80개나 될 정도로 사업을 키워갔다. 그는 "노점을 시작하기 전까지 3D업종을 전전하며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는데 꿈과 미래를 가진 학생들과 알고 지내는 기쁨이 무척이나 컸었다"며 "나 역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2004년부터 5년간 2000만원씩 고대에 장학금을 기부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영철버거는 가격경쟁에 밀리고 신규고객 확보에 실패하면서 모든 가맹점이 문을 닫고 작년 6월엔 안암동 본점까지 폐점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는 같은해 9월15일부터 한 달여간 크라우드펀딩업체 '와디즈'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 총 7100여만원(2600여명 후원)의 자금을 모아 그의 재기를 도왔다. 이 돈으로 영철버거는 올해 1월6일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5가 93번지 2층에서 새 출발을 했다. 지난해 폐점한 본점이 있던 건물에서 작은 골목을 끼고 몇 발짝 옮기면 전면이 유리로 된 지금의 가게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 추억과 명성을 곱씹기라도 하듯 2층에서 옛 본점을 내려다보는 구조다. 4인용 테이블 2개, 2인용 테이블 7개로 단출하게 꾸며졌지만, 식사대용으로 버거를 찾는 학생 손님들로 시도 때도 없이 붐빈다.
평일 기준 하루 버거 판매량은 400여개. 이 대표와 그의 아내, 처남이 일손의 전부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주문을 받고 버거를 만들어 내놓는다. 영철버거 대표 상품인 스트리트버거와 치즈스트리트버거 가격은 각각 2500원, 3500원이다. 이 외에 콜라 사이다 음료와 커피, 구운감자 메뉴도 1000원대에 즐길 수 있다. 이 대표는 정식 가게 오픈시간인 오전 10시보다 한 두 시간가량 빨리 출근해 문을 닫는 10시 이후에도 잔업을 하는 등 14시간 가까이 매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 대표는 "내가 나 자신과 청년들에게 바라는 것은 '인생의 지혜'"라며 "남들이 갖추고 있는 걸 쫓는 스펙 경쟁에 몰두할 게 아니라 배워야 할 걸 하나하나 차분하게 밟아나가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잘되는 만큼 나도 열심히 사업을 함으로써 영철버거가 또다시 공감과 위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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