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 이름 중복 현상 심해...많게는 10개까지 같은 이름...외부 방문객 등 "불편하고 혼란"...서울시 "어쩔 수 없다, 개선책 마련도 계획 없어"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이민우 수습기자]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줄곧 살고 있는 강모(27)씨는 얼마 전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왔다가 중복된 버스정류장 이름 때문에 낭패를 봤다.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진 친구로부터 "홍대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만나자"는 말만 듣고 길거리를 헤맸지만 도무지 친구를 만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홍대 앞에는 '홍대 입구'이라는 똑같은 이름의 버스정류장이 8개나 있었다. 한참을 헤맨 강씨는 약속 시간이 30분이 지나서야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서울을 처음 찾는 외지인이나 외국인이 흔히 겪는 일이다. 도시가 거대화 되면서 버스 노선이 많아지고 도로망ㆍ지하철 등 대중교통망이 복잡하게 깔리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일부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불편을 호소하지만 서울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3일 시에 따르면, 서울 도로변에 버스정류장이 5712개소에 달하는데 똑같은 이름의 버스정류장이 많게는 10개 가까이 있는 등 중복 현상이 심각한 상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교통정보시스템 '토피스(TOPIS)'를 검색해보면 이같은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다. 유동인구가 많고 버스ㆍ지하철 등 대중교통망이 집중된 시내 중심부가 특히 심하다. 일례로 '종로1가' 버스정류장은 총 6개나 되는데, 탈 수 있는 버스 종류가 다 다르다. 예컨대 광화문 방면 '종로1가' 버스정류장은 160번 등 신촌 방면에서 오는 간선버스와 1020번 등 마을버스, N26번 심야 등 지선버스가 정차한다. 종로2가 방면의 또 다른 '종로1가' 정류장은 271번 등 간선 버스와 2500번 등 광역 버스, N26번 심야버스 등을 탈 수 있다.
다른 번화가도 마찬가지다. 강남역의 경우 같은 이름의 버스정류장이 6곳 있고, 합정역 인근에는 같은 이름의 정류장이 9곳에 달한다. 버스정류장마다 고유식별번호(ID코드)가 다르고 마을버스, 지선버스, 간선버스용으로 구분돼 있긴 하지만 초행길에 나선 외지인 입장에선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분간하긴 힘든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선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취직 후 처음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포항 출신 문모(27)씨는 "정신없었다. 정말 서울 사람들은 이걸 전부 다 기억하고 다니는 것이냐"며 "같은 종로2가 정류장이라도 뒤에 숫자나 알파벳이라도 붙여 구분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의 대중교통을 이용한 관광 활성화에 지장을 준다는 우려도 있다. 중국인 유학생 고모(25)씨는 "처음엔 버스정류장을 헷갈려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반면 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입장이다. 도로와 대중교통망이 워낙 복잡한 데다 세분화할 경우 더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현재의 중복된 버스정류장 명칭을 개선ㆍ수정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시는 두 달에 한 번 버스정류장 이름을 심의해 결정하고 있는데, 장소적 대표성과 고유성이 인정되면 같은 이름을 사용하도록 인정해주고 있다.
시 관계자는 "같은 이름의 버스정류장이더라도 대부분 반경 500m 안에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큰 혼란이나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ID코드를 통해 구분할 수 있고, 지역 고유의 명칭이 아닌 주변 대형 상업시설이나 공공시설 이름을 붙이자는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더 헷갈릴 수 있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이민우 수습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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