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기획재정부·문화재청과 '딜쿠샤' 보존·활용 협약 체결...'파란 눈의 한국인' 앨버트 테일러 가족 유품 및 기록 전시관으로 활용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1919년 3ㆍ1 독립만세운동 전날 광산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조선에 와 있던 그는 갓 태어난 아들의 병원 침대 밑에서 이상한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병원 간호사가 몰래 전한 3ㆍ1 독립선언문이었다.
그는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이 선언문을 동생 편으로 도쿄에 보내 전세계에 타전되도록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AP통신의 임시특파원으로 임명돼 일제 하에서 신음하던 한민족의 참혹한 현실을 전세계에 고발한다.
한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한 '파란 눈의 한국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년)씨의 얘기다. 비록 미국인이었지만 우리나라 독립 운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대표적 인물이다.
앨버트 테일러는 일제의 만행을 서양 언론인으로선 유일하게 직접 취재해 세계에 타전했다. 1919년 4월15일 벌어진 제암리학살사건, 1920년 3ㆍ1운동 민족지도자 재판 과정 등이 그의 눈과 손을 거쳐 속속들이 외부에 알려졌다. 그는 반일 활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결국 1942년 추방당했다. 이후 1948년 6월 미국에서 사망했지만,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겨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안치돼 있다.
앨버트 테일러가 한국에 남긴 유산은 또 있다. 그가 1923년 건축해 가족과 함께 머물렀던 종로구 행촌동 소재 근대 가옥 '딜쿠샤'(Dil Kushaㆍ희망의 궁전)가 그것이다. 앨버트 테일러 가족은 이곳에서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약 20년간 거주했다.
이 가옥은 영국과 미국의 주택양식이 절충된 형태인 2층 붉은색 벽돌 건물이다. 개항 이후 지어진 서양식 주택 중에서도 평면 구성과 외관이 독특하다. 화강석 기저부 위로 붉은 벽돌을 세워 쌓은 건물 양식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하다.
전문가들은 일제 강점기 근대건축의 발달 양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보고 있다. 해방 후 국가 소유로 넘어왔지만 방치돼 왔다.
서울시와 기획재정부, 문화재청은 26일 협약을 체결해 이 가옥을 국가 문화재로 지정ㆍ복원해 3ㆍ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 시민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그의 아들ㆍ손녀가 기증한 유품 등 근대사 자료 전시관으로 활용된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