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因도 친구관계도 먹통…'보안해제' 불가능, 국내 피해사례도 심각
2015년 12월 3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원룸, 취업을 준비하는 A는 모처럼 만의 엄마 방문이 반갑다. 두 손 가득 반찬이며 이불이며 생필품까지 살뜰히 챙겨온 엄마는 밥상 앞에서 열심히 식사 중인 딸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럽다. “좋은 데 갈 필요 없어. 네가 덜 힘든 회사로 가. 그래야 얼른 시집도 가고 하지” 엄마 잔소리마저도 반가운 A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찬이 맛있다고 연신 엄지를 치켜든다. 이때 울리는 엄마의 핸드폰. 회사 고객의 긴한 전화라 끌 수가 없다. “엄마 잠깐 밖에서 통화 좀하고 올게. 마저 먹고 있어”
깐깐한 고객 요구에 길어진 통화는 어느새 30분을 훌쩍 넘겼고, 부랴부랴 딸의 방으로 돌아온 엄마 앞엔 먹다 만 밥상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A야, 화장실이니?” 대답 없는 딸. 잠시 후 화장실 문을 연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변기 옆에 쓰러진 딸, 바닥에 흥건한 피, 그리고 구석에 떨어진 핸드폰…. 눈앞의 광경에 잠시 이성을 정신을 잃은 엄마는 가까스로 핸드폰을 꺼내 119에 신고한다.
구급대원들이 출동하고, A는 신속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내 숨지고 말았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A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연신 고개를 내젓는다. 경찰에서 온 사람들이 A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데 대답할 수가 없다. 엄마는 그간 딸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이다. 형사가 내민 딸의 핸드폰, 이걸 뒤져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화면을 켜자 비밀번호 창이 뜬다. 생일, 전화번호, 좋아하던 숫자…. 갖은 숫자를 입력해 봐도 틀렸다는 메시지만 뜬다. 갑자기 화면에 ‘비밀번호 10회 오류’라는 메시지가 뜨고 비활성화란 글씨만 선명하다.
딸의 장례를 위해 빈소를 마련하고 연락을 하려는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엄마는 뒤늦게 딸의 핸드폰을 들고 아들에게 묻는데 뭔가 검색해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지는 아들. “누나 핸드폰 못 풀어, 엄마” 아들은 누나의 핸드폰을 들고 경찰과 데이터 업체 등에 연락하며 백방으로 비밀번호 해제를 알아봤지만, 대답은 하나같이 “아이폰은 10회 오류 나면 복구가 안 된다”는 말뿐이었다. 평소 SNS도 안하고, 취업 준비에 몰두하느라 친구들과 연락도 자제했던 A의 죽음 앞에 가족은 망연자실했다. 게다가 핸드폰이 잠겨버린 탓에 딸의 친구를 부를 수도, 그 전에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왜 하게 됐는지에 대해 유추할 수도 없었다.
이틀 뒤, 경찰 조사 결과 예전에 아르바이트했던 회사 대표가 집요하게 A를 스토킹해왔던 사실이 밝혀졌으나 자세한 문자나 메신저 내용, 사진과 같은 중요 자료는 핸드폰이 먹통이라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A의 빈소에는 뒤늦게 동생이 학교 동창회를 수소문한 끝에 연락이 닿은 그녀의 고교동창 2명만이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이들도 취업 준비에 바쁜 A와는 몇 달 전에 동창 결혼식에서 만난 것이 마지막이라 했다. 이윽고 그녀는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졌고, 아직도 A의 간접적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 연방 수사국(FBI)과 애플 간의 아이폰 보안해제 공방이 연일 화제다. 지난해 12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 총기 테러사건의 용의자인 사이드 파루크의 아이폰5c의 보안해제를 놓고 시작된 이 논쟁은 사생활 보호와 안보 사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정부와 기업 간의 갈등 심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건을 맡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연방지법은 테러 용의자가 사용하던 아이폰5c의 보안 해제를 애플이 기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명령했으나 CEO인 팀 쿡이 이를 거부하면서 공방이 시작됐다.
풀 수 없는 아이폰의 보안체계
실제로 아이폰 보안해제 논란은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앞서 언급한 A양의 사례와 같이 현대인의 생활 전반에 대한 기록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핸드폰은 만약의 경우 갑자기 일어나는 모든 사건사고에 있어 용의자 또는 피해자에 대한 중요한 증거물품으로 활용될 수 있다.
문제는 핸드폰이 아이폰이고, 비밀번호 잠금으로 보안상태에 있는 경우 번호를 알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아이폰은 잠금 해제 비밀번호를 10차례 오입력하면 내부 데이터가 초기화 되게끔 설정되어 있다. 4자리 비밀번호는 약 1만 개의 조합이 가능하고,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그 절반 수준에서 보안을 풀 수 있으나 횟수제한과 동시에 아이폰은 비밀번호 입력 시간을 1/12초로 제한하고 있어 10번 안에 맞추지 않으면 암호를 풀 길이 없는 상황이다.
테러범의 핸드폰에 또 다른 정보가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하에 이번 테러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 측은 강경하게 보안해제를 촉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애플 측은 이번 논란은 프라이버시와 민권에 관한 중요한 논의이며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번 논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FBI가 아이폰의 보안을 해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 및 해킹전문가가 포진한 FBI조차 테러범의 아이폰을 풀지 못하고 제조사인 애플에 해제 요청한 사실을 통해 현재 애플이 출시한 기기에 사용되고 있는 iOS 운영체제 보안의 정교함을 확인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 vs 국가안보
아이폰 보안을 우회하는 기술은 현재로써는 애플만이 갖고 있다. ‘한 번’의 수사협조에 애플이 이토록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보안이 뚫리고, 협조를 빌미로 감시를 허용하게 되는 이 ‘한 번’이 상시적 감시를 허용하게 하는 하나의 전례로 남을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안보를 이유로 개인의 기본 권리를 국가가 침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회적 논의와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너무 많은 돈, 너무 많은 가난, 너무 많은 비만, 너무 많은 헛소리, 하지만 너무 부족한 침묵” 앨런 긴즈버그의 시 ‘너무 많은 것들’은 세상에 넘쳐나는 유·무형의 물질과 간섭을 통렬히 비판한다. A양의 말 못한 비밀도, 극악무도한 테러범의 계획적 은폐도 묵묵부답인 아이폰을 통해 표현한 개인의 기본 권리요, 하나의 묵비권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세상을 뒤덮은 수많은 간섭 속에서, 설령 그 상대가 국가더라도 우리에겐 침묵을 선택할 권리가 있긴 하지만….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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