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맑은 교토에는 맛있는 두부집이 많다. 교토의 맑은 물은 맛있는 두부를 만들 수 있게 했고 교토 사람들은 육수에 두부를 넣고 살짝 익혀 먹는 유도후(湯豆腐)란 명물 음식을 탄생시켰다. 맛의 9할은 물맛이라 할 정도로 첫째도 둘째도 좋은 물을 절대 조건으로 하는 유도후이기에 예부터 손꼽히는 지하수로 둘러싸인 교토의 유도후가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일 년 내내 유도후를 외치고 교토 사람들은 뼛속까지 추운 겨울 유도후를 떠올린다.
교토에서 태어난 유도후, 더 자세한 족보를 찾아가면 유도후 탄생지는 난젠지 일대다. 난젠지는 임제종 사찰로 국가수호와 왕실 번영 등을 기원하며 세웠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 각지에서 참배객들의 방문이 빈번했다. 그래서 난젠지로 향하는 참배로에는 사찰음식점이나 찻집이 늘어섰고 사찰음식의 하나였던 유도후가 특화되어 명성을 얻은 듯하다. 유도후 맛집들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난젠지를 찾았다.
교토의 명물 두부 요리의 시작, 난젠지
22미터 높이의 2층짜리 산몬(三門)의 호쾌함, 고보리 엔슈의 정원, 가노파의 화풍이 남겨진 후스마에(장지문에 그린 그림), 붉은 벽돌로 쌓은 수로각, 봄 벚꽃과 가을 단풍 등 볼거리가 풍성한 사찰은 난젠지다. 임제종 난젠지파의 총본산으로 교토를 대표하는 사원 중 하나다. 어디 빛나는 타이틀이 이 뿐이랴. 1,291년 창건된 사원으로 별궁이 있던 자리에 15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가람을 완성시켰다.
마음대로 꼽은 난젠지 제대로 즐기는 법은 ‘절경이구나, 절경이로세’라는 유행어를 낳은 산몬에서 교토 시내 내려다보기와 국보로 지정된 호죠(方丈)라는 건물의 후스마에 엿보기, 새끼 호랑이가 건너는 정원이라는 애칭을 지닌 호죠정원에서 고보리 엔슈처럼 감상하기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면 단풍이 모두 떨어진 초겨울에 찾기. 둥둥 마음 설레게 했던 연둣빛 새순들이 바람에 나뒹굴고 이리저리 밟히다가 조용히 생을 마감한 난젠지 산책로는 국보급 애수로 젖어든다. 그러나 솔직히 난젠지는 언제 찾아도 좋았다. 사람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좋다. 절과 사찰만 둘러봐도 한 달은 훌쩍 간다는 소리를 듣는 교토에서 난젠지에 대한 교토 사람들의 애정은 각별한 듯했다.
흥미로운 점은 사찰 근처에 교토에서 손꼽히는 두부 요릿집이 여럿 있다는 것. 일본 각지에서 수많은 참배객들이 난젠지를 찾아왔고 절 근처에는 자연스럽게 사찰음식점과 찻집이 들어섰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육수에 두부를 넣고 살짝 익혀 먹는 유도후(湯豆腐)가 명물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교토가 아닌 야마가타의 쇼나이란 고장에서는 ‘난젠지 두부’란 걸 먹는 모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난젠지가 자리한 교토에는 없는 난젠지 두부. 반달 모양의 부드라운 두부로 교토 출신의 한 승려가 쇼나이의 한 두붓집에 교토의 두부 비법을 알려줬다는 설이 전해진다.
명불허전, 교토의 두부 요릿집, 소혼케 유도후 오쿠탄 난젠지텐
근처에서 영업 중인 라이벌 ‘준세이’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난젠지의 유도후를 알리는 메신저는 소혼케 유도후 오쿠탄 난젠지텐(總本家ゆどうふ?丹南?寺店)이다. 정식 이름이 길어서 줄인 애칭으로 부르기를 좋아하는 교토 사람들을 따라 그냥 ‘오쿠탄’이라고 불러야겠다.
나에게는 운이 없어 몇 번이나 면전박대를 받은 아픔 절절한 유도후집이다. 바다 건너온 이방인은 오쿠탄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부지런한 사람들과의 경쟁에 밀려 ‘두부가 품절되어 오늘은 문을 닫습니다’라는 푯말만 여러 번 보고 말았다. 오쿠탄은 매일 일정 분량의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므로 손님이 많으면 오후 두세 시에도 미련 없이 문을 닫아 버린다(다행히 기요미즈데라 근처에 지점을 열어 맛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다).
360여 년의 전통이 낳은 요리는 두부 만들기부터 깐깐하다. 교토의 바로 옆 시가 현의 계약 농가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대두를 교토의 맑은 물로 빚은 특제 두부를 사용한다고 한다. 유도후는 목면두부와 푸딩처럼 말캉말캉한 두부의 중간쯤의 텍스춰를 지녔는데 푸딩 같은 준세이의 두부와는 맛이 좀 다르다. 오쿠탄 두부는 치즈 케이크 같이 조금 더 딱딱한 편이고 콩 향도 짙지만 속은 부드럽다.
육수는 다시마와 가다랑어포로 우린다. 소스도 특제 간장국물에 구조네기라는 교토산 파, 교토 사람들이 즐기는 일곱 가지 향신료를 넣은 시치미를 넣어 데운 두부를 찍어 먹는다. 메뉴는 유도후와 참깨 두부, 튀김, 밥 등으로 구성된 유도후 이치도리(ゆどうふ一通り) 뿐이다. 옛날에는 명 사찰 난젠지에 들어갔다는 옛날 제조법으로 만든 ‘옛날 유도후’도 판매했었다.
풍정 두부 요릿집, 준세이
교토의 유도후 순례는 즐겁다. 오쿠탄에 이어 들른 집은 준세이(順正). 예약을 하지 않으면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린 후에야 입장이 허락되는 잘 나가는 집이다. 전신은 1839년에 세워진 의학교였는데, 많은 미술가와 문화인이 모이는 살롱 같은 공간이기도 했다. 지금도 음식점 안에 당시 이곳을 아지트로 삼았던 예술가들의 서예와 미술품이 걸려 있다. 국가지정 유형문화재인 준세이서원에서 파란 하늘이 도드라져 보이는 일본 정원을 바라보며 맛보는 유도후는 신선의 음식이다.
콩은 매년 흉, 풍년이 심해 계약농가의 콩만 믿고 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는 작물. 그래서 준세이는 매년 요리장이나 사장이 전국을 돌며 좋은 콩을 공수한다. 이렇게 전국에서 선발되어 교토로 수송된 콩은 핫토리두부라는 두부 가게로 보내진다. 두부 장인에게 준세이만의 두부 레시피를 전달하면 두부 장인은 하루에 사용할 분량만큼만 준세이 특제 두부를 만든다고.
준세이의 유도후는 목면두부와 푸딩처럼 말캉말캉한 기누코시 두부의 중간쯤의 두부다. 마치 푸딩 같아 입에서 살살 녹지만 입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 게 매력. 이 푸딩 두부는 홋카이도산 다시마로 우려낸 육수에 살짝 담갔다 먹는다. 겨울에는 향긋한 유자를 띄워 내와 두부에 은은하게 유자 향이 밴다.
유도후의 맛을 좌우하는 두 번째 요소인 양념 소스는 교토의 명물 채소인 구조네기라는 파에 간장물을 섞은 것이다. 유도후 정식을 주문하면 여덟 덩이 정도의 유도후 외에 참깨 두부, 채소찜, 튀김, 채소절임과 밥, 된장 소스를 바른 두부구이 등으로 한 상 거하게 차려진다. 여기에 칭찬해주고픈 또 하나의 테이블 위의 센스가 있다. 교토의 옛날이야기를 정감 넘치는 손글씨와 일러스트로 그린 나무젓가락 포장지. 갖가지 색깔의 종이에 20여 가지의 교토 이야기를 담은 나무젓가락 포장지는 손님들의 폭발적인 요청으로, 정문 옆 기념품 숍 판매대에도 얼굴을 내밀게 되었고 날개 돋친 듯 팔리며 교토 여행을 자랑할 만한 기념품으로 등극했다.
배불리 유도후를 먹은 후에는 준세이서원과 음식점을 한 바퀴 산책해야 한다. 붉은 기둥이 세워진 신사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창과 흡연석임을 알리는 일본 민화, 별실의 화려한 후스마에(장지문에 그린 그림), 두부 타일이 붙은 화장실 등 곳곳에 교토만의 감각적인 디자인이 숨겨져 있다.
Infomation
난젠지 京都市 左京? 南?寺 福地町, 075-771-0365, 08:40~16:40(12~2월은 16:10까지), 경내 입장은 무료이나 호죠, 산몬은 각각 500엔
오쿠탄 京都市 左京? 南?寺 福地町 86-30, 075-771-8709, 11:00~16:00, 목요일 휴무
준세이 京都市 左京? 南?寺 草川町 60, 075-761-2311, 11:00~21:30, 부정기적 휴무
*지하철 도자이(東西)센 게아게(蹴上) 역에서 난젠지까지 걸어서 10분.
글·사진=책 만드는 여행가 조경자(http://blog.naver.com/travelfo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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