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2인자의 세계 - 시도 부단체장 편...'1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경제부단체장'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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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영규· 박혜숙·김봉수 정일웅 기자] '1인지하 만인지상'. 관가에서 흔히 쓰이는 이 말은 예전엔 왕을 보좌하는 재상을 일컬었다. 그러나 현대의 관가에선 직선 광역 시ㆍ도 단체장을 1인자로 모시고 있는 2인자, 즉 부시장ㆍ부지사(부단체장)들을 주로 빗대는 말로 변신했다. 전국 17개 시ㆍ도 부단체장들은 1995년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전만 해도 실무행정 보좌역에 그쳤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가 본격화 된 2000년대 이후엔 한층 강화된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을 요구 받고 있다. 2인자의 화려함 뒤에 남모를 고충과 애환도 만만치 않은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 본다.
▲부시장ㆍ부지사는 어떤 사람들?
전국 17개 광역 시ㆍ도엔 선출직 단체장을 행정ㆍ정무적으로 보좌하는 부단체장이 있다. 부시장의 경우 서울, 부산 등 8개 특광역시에 17명이며 부지사는 경기도 등 9개 시도에 19명이 포진해 총36명에 달한다. 서울시와 경기도만 행정 2명, 정무 1명 등 3명이고 나머지는 행정 1명, 정무 1명 등 2명씩 배치돼 있다. 이들 중 '특별시'인 서울만 정무직으로 차관급 대우를 받고, 나머지는 1급 대우를 받는 국가공무원들이다. 서울시를 제외한 다른 시도 부단체장(정무직 제외)들은 행정자치부와 인사 교류가 이뤄진다. 이들의 임명은 단체장들의 추천을 받은 정부가 승인해야 가능하다.
이들의 업무는 시ㆍ도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비슷한 틀에서 진행된다. 행정 부단체장들이 내부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정무 부단체장들이 바깥 업무를 총괄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서울시의 경우 인사ㆍ재정ㆍ기획 등 일반행정 분야는 행정1부시장, 건축ㆍ교통ㆍ도시안전 등 기술행정은 행정2부시장이 맡는다. 반면 정무부시장은 의회나 정치권, 정부 및 시민사회 등과의 대외 협력을 담당한다.
경기도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지역이 너무 넓다보니 행정1부지사가 남부지역 21개 시군, 행정2부지사가 북부 10개 시군을 각각 관할하도록 했다. 경남도도 서부 지역을 배려해 정무부지사를 '서부부지사'라는 이름으로 임명해 해당 지역을 맡긴다.
▲'홍명보' 뺨치는 행정의 리베로들
한 전직 부단체장은 과거 자신의 현직 시절에 대해 " 정치와 행정을 오가는 자리였다"고 회상했다. 지역에서는 '1인지하 만인지상'의 차관급 또는 1급 공무원이지만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단체장에 의해 추천ㆍ임명되기 때문에 신분 보장이 안 된다. 기업 임원과도 비슷하다. 공무원들을 일일이 다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이외에 국회, 시ㆍ도 의회, 이익단체, 시위대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살펴야 해 반쯤 정치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자리다.
행정 실무를 사실상 총괄하는 '안방 마님' 역할도 쉽지만은 않다. 행정업무 절차는 물론 공무원 세계에 익숙치 못한 시도 단체장과 공무원들 사이에서의 가교 역할, 중앙 정부에 예산ㆍ인사 확보를 위한 로비 업무, 지역 시민단체 등과의 대외협력 업무 등 갖가지 역할이 난마처럼 얽혀있다. 매월 1회 개최되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정책협의회(옛 부단체장회의)에 참석하는 일도 빠트릴 수 없는 임무다. 요즘은 여기에 더해 '경제 살리기'나 '시민사회 및 야당과의 소통' 등 단체장의 주요 역할 중 하나를 통째로 위임받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단체장들은 '1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자리를 즐길 새도 없이 온갖 격무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경제부단체장' 전성시대
경제부단체장 제도는 17개 시도 중 8곳에서 운영된다. 지자체마다 재정난 탓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곳이 많아지면서 국비 확보 등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외부 인사를 경제부시장으로 영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로 예산 문제나 규제 완화 등의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행정 전문가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기획재정부나 국토건설부의 고위 관료 출신이 많다.
김규옥 부산시 경제부시장, 우범기 광주시 경제부시장, 올해 4월 김해시장 재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최근 사퇴한 이태성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 등은 모두 기재부 출신들이다. 2014년에 처음 경제부시장제를 도입한 인천시는 기재부 제2차관을 역임한 배국환씨에 이어 건설교통부와 국토해양부 출신의 홍순만씨를 지난해 8월 새 경제부시장으로 발탁했다. 수년 째 사업 진척이 더딘 제3연륙교(청라~영종도) 건설과 경인고속도로 일반도로화 사업 등 지역 현안을 해결할 적임자로 꼽았기 때문이다. 이들 사업은 성패는 모두 국토교통부와 협의가 최대 관건이다.
한편 서울시도 기존 3석인 부시장 자리에 '경제부시장'을 추가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꾸준히 행정자치부를 설득 중이다. 서울시는 기존의 토목ㆍ개발ㆍ철거 위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심 재개발의 틀을 정립하기 위해 경제부시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
▲ '소통의 통로'가 된 2인자
부단체장은 단체장이 중앙 정부나 정치권, 시민사회 등과 소통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도 감당한다. 경기도의 경우 야당(더불어민주당) 출신 이기우 전 국회의원을 지난해 7월 '사회통합부지사'로 임명해 반대 세력 끌어안기에 나섰다. 지난해 7월 남경필 경기지사가 획기적으로 시도한 '연정'의 일환이었다. 그 점을 감안하면 이 사회통합부지사야말로 소통이 가장 중요한 업무인 셈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중앙과의 소통 통로로 부지사를 활용한 케이스다. 제주도 출신이 아닌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을 정무부지사로 영입해 중앙 정부 및 국회와 소통하는 교두보로 활용했다. 재선 국회의원 출신인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지사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국회에서의 경험 등 정치적 노하우를 살려 '순수 시민단체' 출신인 박원순 시장이 국회나 소속 당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이밖에 열린우리당 출신인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정무부지사에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강병기 전 최고위원을 임명해 '공동 지방정부'의 취지를 살리기도 했다.
▲ 부단체장의 하루는 '25시'
"안살림 챙기는 걸 도맡다 보니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다." 최근 명퇴한 박수영 전 경기도 행정1부지사의 말이다. 박 부지사는 지난해 7월 남 지사 당선 후 24시간을 쪼개서 써도 부족할 정도로 바쁜 업무에 시달렸다. 새로 취임한 남 지사가 업무에 익숙치 않아 대부분의 결재를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외부 행사를 다녀와 책상에 수북히 쌓인 결재서류를 처리하는데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다. 또 외부행사가 없는 날은 하루 종일 각 실국에서 올라오는 결재서류에 시달리느라 화장실을 갈 엄두도 못냈다고 한다.
안살림은 물론 대정부ㆍ국회 로비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부단체장들도 많다. 박 부지사의 후임으로 지난해 10월 부임한 이재율 행정1부지사는 취임하자 마자 행자부 시절의 연줄과 지역 연고를 동원해 연말 내내 국회에서 살다시피 했다.경기도의 주요 현안 사업에 대한 예산을 따내기 위한 임무 때문이었다.
▲능력있는 '2인자' 구하러 '삼고초려' 행렬도
이처럼 부단체장들의 '사용법'이 다양해지자 능력 있는 일꾼을 구하려는 단체장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재난안전비서관 출신인 이재율 부지사는 유정복 인천시장과 남 지사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행자부와 청와대와 행자부를 거치면서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유 시장과 남 지사가 서로 모셔 가겠다는 경쟁에 나섰던 것이다.
유 시장은 이 부지사의 대학 선배인데다 행자부장관 시절 같이 근무한 인연을 내세웠다. 남 지사도 역시 대학 동문이었지만 이 부지사보다 나이가 5살 가량 어리다는 약점 때문에 관가에서는 한동안 이 부지사가 인천시로 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나 결국 이 부지사는 보다 적극적인 구애를 보낸 남 지사의 품안에 안기고 말았다. 경기도에서 오래 근무해 뼛속까지 '경기도맨' 다운 이 부지사의 선택이었다는 후문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신세
관가의 2인자들은 특성상 외풍에 매우 취약하다. 배국환 전 인천시 경제부시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13조원에 이르는 부채 해결과 투자유치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유 시장에 의해 발탁됐지만 취임 1년여 만에 사퇴했다.
행자부 지방재정국장, 기획예산처 재정전략실장, 기재부 제2차관 등을 거친 경제통이었지만 스스로도 "정무부분에서 소통이 부족한 점에 부담을 느꼈다"고 토로할 정도로 임기내내 소통부재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배 전 부시장은 지역 연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와 거리를 좁히는데도 한계를 드러냈다. 취임하기도 전 부터 법 위반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경제부시장에는 인천에 주소를 둔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는 조례를 어겼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인천 시민단체들도 "지역 실정을 잘 알고 지역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인물이 부시장에 임명되어야 한다"고 반발했다. 결국 그는 1년여만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최근 중앙정부와의 갈등 때문에 다 잡았던 2인자의 자리를 놓친 케이스도 있다. 최근 한 광역자치단체는 신임 부단체장 임명 과정에서 정부의 거부로 1순위로 추천된 A씨를 전격 교체하는 소동을 벌였다. 정부는 표면적으로 A씨가 감사에서 경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실제론 야당 소속인 해당 광역자치단체장과 정부의 신경전 와중에서 발생한 '희생양'이었다는 게 관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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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규 기자 fortune@asiae.co.kr
박혜숙 기자 hsp0664@asiae.co.kr
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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