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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으려 여인 살해한 보일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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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옛 사건파일'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아내와 장모를 포함해 10명을 살해한 강호순. 그의 행각을 ‘쾌락성 살인’이라고 규정한 사람은 범죄 프로파일러인 경찰청 김원배 연구관이다. 30년간 숱한 살인을 분석해온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살인범’을 물었더니 이동식을 든다. 전문가가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 살인자는 어떤 사람일까.


보일러공 이동식(당시 42세, 전과4범)은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이었다. 그는 1982년 11월 이발소에서 만난 면도사 김모양(24세)과 가까워진다. 이씨는 버스안내양을 모델로 찍은 자작 사진집을 김양에게 보여준다. “출세시켜줄게. 나랑 누드 찍으러 가자.” “안돼요. 일해야 돼요.” “내가 일당 5만원을 줄게. 하루 쉬어.”

12월14일 두 사람은 서울 시흥에 있는 호암산에 오른다. “옷 벗으면 감기가 들 거야. 감기약을 먹어둬.” 그는 미리 준비한 청산가리를 넣은 캡슐 두 알과 함께 물약을 그녀에게 준다. 산에 오르기 전 버스정류소 옆 약국에서 그가 감기약을 사는 걸 봤던 김양은 별 의심없이 그걸 받아 먹는다. 이씨는 죽어가는 김양을 니콘FE 카메라 2대로 촬영했다. 나중엔 옷을 벗겨 계속 찍었다. 21장의 연속 사진이 카메라에 담겼다. 1983년 1월 신문들은 경찰이 내놓은 사진 일부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시시각각 고통에 가슴을 쥐어뜯는 인간의 모습은 지옥 그대로였다. 숨을 못쉬어 답답했던지 입을 벌린 채 그녀는 죽어갔다.


이동식은 결혼 이듬해인 1976년 코비카 카메라를 구입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진에 입문한다. 이후 10여 차례의 대회 입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좀 더 극적인 장면을 찍고 싶었다.” 그가 경찰에서 실토한 자백이었다.


당시 중앙일보는 이 사건에 대한 전문가 견해를 실었다. 사진평론가 이명동씨는 “140여년의 세계 사진 역사에서 사람의 죽어가는 표정을 담기 위해 살인을 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고 놀라워하면서 “범인이 찍은 사진을 예술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못박는다. 그는 로버트 카파의 ‘어느 병사의 죽음’(1938년 9월 5일, 스페인 코르도바 전선, 죽어가는 병사를 촬영함)과 비교하면서, 이동식의 경우는 “무식하고 무모한 결정적 순간의 시도”라고 비판한다.


이 희대의 살인범은 1986년 5월 다른 살인범 4명과 함께 사형이 집행됐다. 죽어간 자와 죽인 자가 모두 사라진 지금, 저 섬뜩한 사진이 남아, 차가운 카메라의 눈 뒤에 숨은 야수의 빗나간 예술욕망을 증거하고 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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