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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핑계백태]올 최악의 핑계는 '담뱃값 건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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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올 연초에 담뱃값을 평균 2000원 인상했다. 명분은 국민의 건강 증진이었다. 담뱃값이 큰 폭으로 오르면 국민들이 흡연을 줄일 것이라는 논리였다. 물론 세수 증대 효과도 곁다리 이유로 슬쩍 붙였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살펴보니 뭔가 크게 속은 듯한 느낌이다. 인상 당시 줄어들었던 담배 판매량은 어느새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담배 판매로 거둬들인 세금만 확 늘어났다. 당시 내걸었던 국민 건강 운운은 세수를 염두에 둔 허울 좋은 핑계였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바야흐로 핑계가 판치는 사회다.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건강을 염려해주는 척 핑계를 대며 서민 호주머니를 터는, 이런 이중성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진실과 진정성은 좋은 가치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불편함을 낳을 때도 있다. 살짝 진심을 가리면, 이익과 효용을 얻어낼 수 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을 포기하는 것도 일종의 노하우일 수 있다. 수많은 갈등과 경쟁 속을 살아가야 하는 2015년 대한민국의 사회적 생태계를 고려한다면 핑계를 마냥 '악(惡)'이나 부도덕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우스울지 모른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옛말은 이것이 요즘에만 기승을 부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거짓말의 한 양상이었음을 말해준다. 변호사란 직업도 사실상 변명을 효과적으로 잘하고 해명을 능숙하게 하는 직업이 아닌가. 나날의 뉴스에서, 혹은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만나는 '핑계'란 친구의 면면을 들여다 보며 그 내면을 진찰해보자. 이른 바 핑계의 사회심리학이다.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이 치러지던 날, 박근혜 대통령은 감기와 과로가 겹쳐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건강이 악화되어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갈 수 없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해명을 믿었을까. 해외순방의 여독으로 그는 진짜 몸이 불편했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많은 국민들이 '핑계'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빅데이터 분석서비스 펄스K를 통해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박근혜'에 대한 언급량을 조사한 결과 총 4만4474건이 거론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긍정과 부정을 판별할 수 있는 2만6920건을 분석해보니 부정적인 내용은 2만2282건으로 82.8%를 기록했지만 긍정적인 내용은 3246건, 12.0%에 불과했다. 중립적인 내용은 1392건, 5.2%였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상당수 국민들이 대통령의 진심을 믿지 못하고, 그가 어떤 정치적 판단에서 불참을 결정하고 핑계를 댔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를 담는다. 이런 불신은 치명적이다.


안철수의원이 탈당한 것도 "국민을 위해서"이며, 문재인대표가 대표직을 사수한 것도 "국민을 위해서"이다. 문재인을 지키겠다고 당에 남는 이도, 안철수를 지원하러 당을 떠나는 이도, 모두 핑계는 "대한민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이다. 재벌 총수들은 법정에 서면 어김없이 건강문제가 심각해진다. 큰 일하는 사람들만 그러랴. 보통사람들의 일상 속에서도 핑계는 넘쳐난다. 연차를 내기 위해, 회식에서 빠지기 위해, 시댁에 가지 않기 위해 그럴듯한 핑계를 댄다. 약발좋은 자구지단(藉口之端, 핑계거리)을 잘 써먹는 것이 세상살이의 센스처럼 여겨진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핑계를 다 눈 감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용치를 넘은 '악성 핑계'는 역사까지도 바꿔치기 한다. 지난 식민통치와 전쟁범죄, 그리고 위안부에 대해 온갖 핑계로 변명을 일삼던 이웃 국가의 총리가 우리의 공분을 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핑계를 접고 사실을 인정하고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데까지 마음을 이동시키는 일이 그에게는 불가능해 보인다. 왜 그럴까. 자신이 대는 핑계가 역사적 과오를 떳떳하게 분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과하는 것보다 핑계를 대면서 피하는 것이 국익이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비난 여론에 직면한 기업들도 이를 무마하기 위해 핑계를 찾는다. 최근 대규모 감원을 진행하며 '청년명퇴' 논란을 일으켰던 두산인프라코어는 희망퇴직 거부 직원에게 회고록을 쓰도록 강요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급히 이유를 댔다. "회고록 쓰기는 명상하기, 스트레스 관리, 건강관리 등 하루 일과 프로그램들 중 하나였습니다." 내보내려 하는 직원들의 건강을 챙겼다는 저 말이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격이 아닌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핑계에 못지않게 보통사람들이 사소한 일상 속에서 방패막이처럼 써먹는 변명도 많다. 싱글녀 딸이 부모에게 남자친구와 2박3일 여행을 갈 때, 선택하는 것도 핑계거리다. "직장 여자동료들이랑 다녀올게요." SNS에선 이런 고민남녀들에게 '인생꿀팁'이 되는 핑계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이들도 많다. 소개팅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가 재회 약속을 잡자고 하면 뭐라고 말하면 될까요? 이런 '절실한 핑계학 개론'은 세상의 윤활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심리학자 브리기테 로저는 그의 저서 '핑계의 심리학'에 "흔히 어떤 일에 이유를 대거나 정당화시키면서 진실을 왜곡하려고 할 때 의식적으로 핑계를 늘어놓는다"며 숨은 목표가 있어 의식적으로 솔직해지지 못할 때 하는 거짓말이 바로 핑계라고 썼다.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나 갈등을 피하고 성가신 일, 비난, 벌 등을 모면하고자 자신의 무죄를 핑계로 입증한다는 것이다. 속셈이 따로 있는 상황에서 내놓는 그럴듯한 명분이 핑계라는 얘기다.


핑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학문적 접근도 있다. '핑계의 귀인/인식론적 분석(최상진ㆍ임영식ㆍ유승엽)'이라는 논문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 행위의 사회적 명분을 보호하려는 동기가 강해 핑계가 발달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인간은 결과가 좋으면 내부 기인에서 찾으려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외부 기인을 찾으려는 습성이 있다"며 "외부로 책임을 돌리면 사건 속에서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가 드러났을 때 발생하는 긴장감과 스트레스, 책임감 등에서 벗어나 자기 합리화나 타당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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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에는 대개 구체적인 실익이 있기에 쉽게 그 유혹에 빠지게 된다. 살인,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이 심신미약을 핑계로 대며 감형을 노리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공주치료감호소 정신감정 요청 건수는 2005년 360건에서 지난해 604건, 올해 11월말 기준 630건으로 증가했다. 밑져야 본전이고 잘 되면 감형을 받을 수 있어 피고인들이 줄줄이 정신감정을 신청한다.


그러나 핑계는 어쨌든 거짓말이며, 문제의 비정상적인 해결법임에 틀림없다. 상황을 호도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자기 방어이며 합리화 기제이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수저계급론도 이를 합리화 시키는 청년세대의 패배의식이 뒷받침한 것"이라며 "청년들이 아무리 해봐도 실제 타고난 배경을 넘어서지는 못한다는 외부 기인에서 핑계를 찾으며 자기를 타당화하고 문제의 해결을 쉽게 포기한다"고 지적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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