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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25년 현대맨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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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25년 현대맨의 고뇌 노종섭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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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간에 오랜만에 만난 대학 1학년 딸이 그럽니다. "아빠 내 생일이 정주영 회장님이랑 같은 날인 거 알어?ㅎ" 11월25일. 그러고 보니 현대와 전 어떤 운명으로 엮어진 듯합니다. 현대에 입사해 한 곳에서 25년째. 현대아파트에 살면서 현대차를 탑니다. 아내도 현대에서 만나 결혼했고, 큰딸은 현대고를 다녔습니다. 신기하기도 합니다. 딸이 또 그럽니다. "학교 토론회 주제가 남북교류와 관련된 건데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고 찬성하는 쪽이야. 요즘 현대가 어려운 것도 교류중단 때문인 거 같아요ㅎㅎㅎ. 기특합니다. 요즘 정말 힘겨운 과정을 보내고 있는데 반드시 극복해 내고 다시 멋지게 재개할 겁니다. 운명입니다. 기왕이면 딸이 대를 이어 현대맨이 되기를 기대합니다ㅎ."


평소 가깝게 지내는 현대그룹 임원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접하고 가슴이 찡했다. 그의 허락 없이 글을 그대로 올린 것은 25년을 현대맨으로 산 그의 애환, 힘겨운 과정을 보내고 있는 소회, 아쉬움, 그리고 위기극복 의지가 글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모처럼 늦잠자고 일어난 토요일 아침, 창밖으로 실눈 같은 눈발이 힘 쭉 빼고 내릴 때 올렸다는 그의 SNS를 보면서 최근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항상 밝고 따뜻하던 그의 모습이 최근 들어 사라졌다. 그룹이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도 온화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도 비슷한 시기에 자구안을 발표한 다른 그룹보다 빨리 자구안을 100% 초과달성했다며 평상심을 유지했다. 오히려 채권단 및 금융당국이 현대그룹을 '구조조정의 모범기업'으로 거론한다며 위기극복을 자신했다.

그런데 한 달 전쯤부터 얼굴에는 긴장감이 돌고 초초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구조조정의 완결판이었던 현대증권 매각이 불발될 때쯤부터다.


현대증권 매각 불발 이후 구조조정 모범사례라고 치켜세웠던 금융권의 시선이 180도 돌변하면서 그룹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그의 얼굴 표정이 달라진 것은 해운사를 비롯한 정부의 최근 구조조정이 정작 '큰 그림' 없이 찍어내기식 성과에 집착하고 있어 이 과정에서 회사가 자칫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전체적인 밑그림 없이 시작한 구조조정은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는 것쯤은 과거 구조조정에서 경험한 것들이다. STX그룹, 동부그룹 등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룹이 해체되거나 대폭 축소되는 일을 겪었다. 특히 해운 같은 기간산업은 잘못된 처방으로 관련 산업이 죽으면 되살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이들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접근부터 신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스스로 구조조정을 열심히 하는 기업마저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어 없애버리는 분위기가 정착된다면 어느 기업도 구조조정에 선뜻 나서지 않게 된다.


돌변한 채권단의 태도, 정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불안, 기간산업에 대한 잘못된 처방, 그가 노심초사하면서 SNS에 글을 올린 배경일 게다. 현대맨으로서 25년을 열심히 달려왔지만 갑작스레 외딴섬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심정이었을 테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동료나 선후배들이 SNS에 응원 댓글을 달았다.


후배의 글이다. "현대상선은 헤치고 일어날 것입니다. 선배님, 저는 현대를 떠난 지 6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정주영 명예회장님의 담담한 마음을 가지자는 어록은 이미 저의 삶의 모토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25년은 더 갈 수 있는 현대상선 파이팅."


또 다른 댓글, "기업가정신, 창업정신이 한국에서 무너졌다고 하는데 정주영 정신을 되살려야 할 시기입니다, 배가 고파서 하는 헝그리정신이 아니라 뭔가를 이루고 말겠다는 도전정신이 정말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는 이렇게 화답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습니다. 이봐 해 봤어? 왕회장님이 다시 묻고 계십니다. 기필코 시련을 넘어 영광의 시대를 열고야 말 겁니다."






노종섭 산업부장 njsub@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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