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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아파트 관리비의 투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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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아파트 관리비의 투명성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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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에는 아파트 거주 비율이 더욱 높다. 서울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반포 주공아파트가 지어지면서부터다. 뒤이어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인기가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40년이 넘는 아파트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아파트 관리비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생각은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할 돈이라고만 생각했지 비리나 부정이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런데 관리비와 관련된 부정행위나 분쟁이 점차 늘어나더니 이를 근절하기 위해 2년 전 주택법이 개정됐다. 3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에 대해서는 외부감사를 의무화해 올해 1월부터 처음으로 아파트 관리비에 대한 외부감사가 시행됐다.

국토교통부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올해 300세대 이상의 아파트 8997개 단지 중 92.3%인 8308개 단지가 외부 회계감사를 받았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회계감사 비용이 단지당 평균 205만원이라는 점이다. 국토부는 이 금액이 '당초 우려와 달리 크게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표현했는데 이처럼 감사비용이 낮아서 다행이라고 하는 생각이야말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아파트 관리비가 늘어나는 것을 좋아할 주민은 아무도 없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감사가 의무화 되지 않았던 지난해엔 감사비용이 60만~70만원에 불과했다고 하니 분명 관리비 인상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감사비용을 추가로 지출하면서까지 아파트 관리에 대한 외부감사를 실시하는 목적은 예산집행의 부정이나 부실을 막아 관리비가 엉뚱한 데로 새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관리비를 더욱 절약하고자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외부감사를 제대로 받는다면 불필요한 비용지출을 줄이고 부정을 막아 오히려 관리비가 절감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200만원 정도의 외부감사 비용으로는 수박 겉핥기식의 감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관리비 절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정도의 감사라면 차라리 받지 않는 게 더 낫다. 제도 도입의 취지에 맞게 외부감사를 통해 관리비의 부정과 비리를 근절하고 관리비를 절약하려면 제대로 된 감사를 받아야 한다.


감사비용보다 더 크게 관리비가 절감 된다면 주민들도 감사비용을 더 이상 아까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량기업일수록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철저한 외부감사를 받으려고 하는 이유도 외부감사로 인해 얻는 혜택이 더 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대한 외부감사는 시행 첫해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외부감사의 혜택을 실감할 기회도 없고 감사비용으로 인한 관리비 증가를 우려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에 대한 제대로 된 외부감사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아파트에 대한 외부감사는 공공성이 높기 때문에 감사계약을 자유경쟁에 맡겨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자유수임제하에서는 공인회계사 간의 과당경쟁으로 덤핑수주가 이뤄지기 마련이고 감사수임료 덤핑은 곧 부실감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파트에 대한 외부감사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외부감사인을 종합 관리하고 배정하는 지정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둘째, 아파트의 규모나 관리비의 규모에 따라 최소 감사시간을 정해야 한다. 최근 공인회계사회에서 100시간의 최소 감사시간을 가이드라인으로 정했다가 물의를 빚자 철회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반발은 관리비 인상을 우려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궁극적으로는 아파트 단지의 규모와 관리비의 크기에 따른 보다 합리적인 감사시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셋째, 주민들의 관리비 인상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관리비 인상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제대로 된 외부감사는 관리비 절감을 이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관리비가 크게 증가하는 경우엔 부실감사를 철저하게 검사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 또 서민아파트에 대한 감사비용에 대해서는 정부차원의 지원도 제공돼야 한다.


지난달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국제총회에 참가한 외국 공인회계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한국은 제도는 잘 갖춰져 있는데 제대로 집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회계투명성이 낮다." 아파트 관리에 대한 외부감사도 제도만 갖춰 놓은 것으로 그치지 말고 잘 정착될 수 있도록 보완해 우리 국민의 주름살이 조금이나마 펴지길 바란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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