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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정부 R&D사업, 좀비기업의 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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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정부 R&D사업, 좀비기업의 온상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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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비기업이 화두이다. 좀비기업은 정상적인 기업에 돌아가야 할 혈액(자금)을 빨아 먹으며 생존하는 암적인 존재다. 드디어 감사원은 좀비기업을 척결하기 위해 정의의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런데 좀비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불편할 것 같다. 사실 좀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인간을 공격하거나 해를 끼치는 존재는 아니다. 서아프리카 종교인 부두교에 따르면 좀비는 사제 보커가 인간으로부터 영혼을 뽑아낸 존재다. 보커에게 영혼을 빼앗긴 인간은 판단능력을 잃어버리고 좀비가 돼 보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보커는 이런 좀비를 노동자로서 착취하거나 인신매매꾼에게 팔아버리기도 한다.

이런 인간의 좀비화에 사용되는 약품이 '좀비 파우더'라고 한다. 웨이드 데이빗 하버드대 민속식물학자에 의하면 좀비 파우더의 주성분은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으로 이 독을 인간에게 침투시켜 가사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다. 가사 상태로 있으면 산소 결핍에 의해 뇌의 전두엽에 손상이 생겨 판단능력이 결여된 인간, 좀비를 만드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좀비는 영화 속에서처럼 인간을 공격하는 악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가련한 존재였던 것이다. 지금의 공포스러운 좀비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의 밤'이었으니 좀비들은 억울할 법하다.


감사원이 한 해 약 19조원을 투입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칼을 빼들었다. 부처 간 중복과제 등 예산투자의 효율성 및 투자성과를 집중 점검하는 등 국가 R&D 사업 전반에 걸쳐 문제점을 철저히 파헤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감사원의 선전포고와 달리 좀비기업들은 그다지 긴장하는 기색이 없다. 어차피 지나가는 바람이고 생존하는 데 크게 지장 없다는 반응이다.

감사원의 의욕과는 달리 정부의 R&D 사업의 좀비화는 쉽게 단절될 수 없다. 아마 감사원은 R&D 사업의 중복성을 집중 확인할 것이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업이지만 다른 사업명칭을 가지고 있을 때, 또는 동일한 사업을 다른 기술로 접근할 때 그들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감사하는 주체가 R&D 사업의 비전문가인 마당에 말이다. 정부 사업에 기생해 사는 좀비기업을 색출해 내는 작업 역시 쉽지 않다. 정부 과제 심사에서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해당 기업에게 발표를 시키고 심도 있는 질의응답을 해도 판별은 쉽지 않다. 더구나 과제 심사위원이 비전문가일 때 이미 게임은 끝이다.


좀비기업을 차단하는 것이 어려운 다른 이유는 정부 공무원이나 산하 기관과 거대한 먹이 사슬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비기업은 '갑'인 정부 공무원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이 점에서 관료와 좀비기업은 공생관계인 셈이다. 좀비기업은 정부 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전담 부서를 가지고 있고 정부 과제를 수주하기 위한 유능한 컨설턴트조차 존재한다.


좀비기업이 상황에 따른 변신에 능하다. 이들은 카멜레온처럼 관료의 주문에 맞춰 어떤 형태의 제안서든지 만들어 온다. 뛰어난 문서 편집 능력, 전문가 뺨치는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웬만한 수준의 심사위원은 당해낼 수 없다.


사후 체크가 문제라고? 이 역시 어렵지 않다. 해당 사업이 실패로 평가되면 담당 공무원이 문책을 당하기 때문에 심사위원과 사전에 결론을 조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정부 R&D 사업의 99%가 성공으로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서류상으로 성공한 R&D 사업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한국의 R&D 정부 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지만 그 성과는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몇 년 지나면 정부 부처의 담당자가 바뀌고 전임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 정책을 기안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은 참 편리하다.


오늘도 좀비기업은 솔로몬왕의 명언을 되새길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그렇다. 정권은 짧고 좀비기업은 길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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