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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서거]1차 북핵위기·김일성 사망… YS정부 남북긴장감 최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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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서거]1차 북핵위기·김일성 사망… YS정부 남북긴장감 최고조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하면서 1차 북핵 위기가 촉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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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이후 연이은 개혁조치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냈지만 남북관계 등 대외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한일관계도 갈수록 악화돼, YS가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하기도 했다. 특히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YS를 "자유민주주의의 투사"라고 하면서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하기도 했지만, 이후 북한 핵 문제가 터지면서 한미관계도 삐걱댔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이후 김일성과 남북정상회담을 약속하고, 남북고위급 회담과 적십자회담을 통해 이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하면서 1차 북핵 위기가 촉발됐다. 이듬해인 1994년 3월 남북 특사교환 실무회담에 나선 박영수 북한 대표가 "전쟁이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한 발언이 공개되자 서울은 공포에 빠졌다.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고, 미국은 항공모함 5척을 동해로 보내 핵시설 공습 준비를 하는 등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부설 국립안보문서보관소(NSA)가 지난해 공개한 1600건의 한국 관련 기밀문서에 따르면 북한의 '서울 불바다' 위협 발언 한달 뒤인 1994년 4월 20일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과 이병태 국방장관은 북한 위협에 대응할 원칙에 합의한다. 페리 장관은 한반도 전쟁에 대한 미국의 세가지 원칙을 설명했다. 미국이 먼저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은 전쟁을 유도하지도 않을 것이며, 미국은 약하게 보여 (오판에 의한)전쟁을 초래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지만, 북한이 도발해온다면 미국은 피하지 않고 맞대응 하겠다는 뜻이다.

페리 장관은 "북핵의 외교적 해법이 바람직하나 이 방법이 실패하면 제재가 불가피하고, 제재는 긴장을 높일 수 있어 한미 양국이 군사적 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사실상 전쟁 대비를 주문했다. 당시 북한은 제재는 곧 전쟁이라고 위협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북이 도발하면 제2의 한국전쟁을 불사하려는 미국과 또 다른 전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한국의 입장 차는 컸다. 당시 이병태 장관은 페리 장관에 동의하면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한국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은 초토화되고 6ㆍ25 때보다 100배나 큰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한국에게 전쟁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틀어진 한미관계와 어긋난 남북관계를 풀어준 것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최근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한 카터 전 대통령은 앞서 1차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 6월15일부터 3박4일간 개인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 낸 바 있다. 당시 김일성 주석과 회담한 뒤 같은 달 18일 오전 판문점을 통해 서울에 도착,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김 주석의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전달하고 김 대통령이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미궁속에 빠졌다. 1994년 7월에 김일성이 갑자기 죽으면서 남북관계는 임기 내내 풀리지 않았다.특히 96년에는 강릉 무장공비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결국 1차 핵 위기로 북한은 대북 경수로 지원이라는 당근을 얻었다. 하지만 북한은 비밀리에 핵개발을 지속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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