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소문만 무성...은행들 노조 눈치보며 미적미적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것과 달리 국내 금융업계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저성장ㆍ저금리의 고착화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데다 비대면거래 증가 등의 환경 변화로 금융사들이 몸집을 줄여야 하는 여건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 내년부터 본격화되는 기업 구조조정에 대비해 대손충당금도 더 쌓아야 한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노조와의 협상이 필수 조건이다. 이미 노사는 성과급의 비중을 높이는 문제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조정이라는 휘발성이 강한 안건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면 양측간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한국SC은행이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로 했지만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지 장담하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20일 한국SC은행은 만 40세 이상, 1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한국SC은행은 구조조정 대상자가 1000여명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퇴직 신청을 하면 법정 퇴직금 외에 근속 기간에 따라 32~60개월치 특별퇴직금, 최대 2000만원(1인당 1000만 원)의 학자금, 재취업 또는 창업 지원금 2000만원이 지급된다. 한국SC은행 관계자는 "희망퇴직 카드는 노조에서 먼저 꺼냈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은 구조조정에 관한 소문만 무성할 뿐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다. KB국민은행이 빠르면 다음달 임금피크제 적용자에 한해 희망퇴직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지만 확정되지 않았다. 우리은행도 매년 임금피크제 적용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희망퇴직 외에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올해 360명의 임금피크제 대상자 중 200여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해 회사를 나갔다.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한국SC은행과 구조조정을 논의조차 못하는 국내 은행의 차이는 '노조'에서 갈린다. 전국금융산업노조조합(금융노조)에 속해 있는 은행권 노조들은 결집력이 좋고 발언권이 강한 편이다. 금융당국이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성과주의를 압박하는 것과 관련해 금융노조가 전날(19일) "일방적으로 추진을 강행하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시중은행 부행장은 "내년에는 저수익 기조가 더 심화될 것으로 보고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며 "수익성은 악화되지만, 노조와의 동의가 없으면 구조조정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