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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해외건설]현대엔지니어링-사막바람·영하 30도, 극한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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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흔히 보는 모래가 아니라 석회질 처럼 가는 작은 흙입자가 날리는 바람인데요. 그게 한 번 제대로 불었다 하면 한 치 앞도 안 보입니다. 작업도 당연히 중단되구요. 여름엔 50도, 겨울엔 영하 30도까지 떨어집니다. 극한의 더위와 추위가 번갈아 오는거죠. 겨울엔 ‘콜드쇼크’(저온충격)를 걱정해야 할 정도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의 '우스튜르트 가스케미컬 플랜트(UGCC)' 프로젝트 현장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2시간이 걸려 누쿠스공항에 내린 후에 아직 공사가 채 끝나지도 않은 울퉁불퉁한 도로를 따라 자동차를 타고 다시 2시간여를 달려가야 한다. 누쿠스는 우즈베키스탄 내 자치공화국인데 빈국인 이 나라에서도 시골 같은 곳이다.

[점프!해외건설]현대엔지니어링-사막바람·영하 30도, 극한의 사투 현장으로 가는 차량 앞을 막아선 도로 위의 낙타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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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의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허름한 단층짜리 건물들과 소떼를 몰고 가는 모습, 그리고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광막한 우스튜르트 대지 뿐이었다. 출발한지 30분쯤 지나자 인적도 거의 끊기고 하늘의 푸른빛과 땅의 황색만이 펼쳐졌다. 가끔 마른 목화밭이 보였다.


급기야 차는 비포장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TV에서나 보던 오지의 장거리 자동차 경주가 연상될 정도로 차는 심하게 요동쳤고 어지럼증을 느꼈다. 저 멀리 반대쪽에서 차들은 정면으로 다가오다 아슬아슬하게 비켜가곤 했다. 조금이라도 지면 상태가 좋은 곳으로만 가려다보니 오가는 차량들이 비슷한 길로 다니는 것이다.

멀미 나는 구간을 지나고나니 이번에는 수십마리의 낙타들이 도로를 뒤덮고 있었다. 백마를 탄 몰이꾼과 함께였다. 차는 한참동안 멈춰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거짓말처럼 황무지 사이에 여러 개의 탑들과 철 구조물, 치솟는 불길로 이뤄진 UGCC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는 발주처쪽 인력들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통행을 관리하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내에서 최대 규모의 플랜트이고 준공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점프!해외건설]현대엔지니어링-사막바람·영하 30도, 극한의 사투 우즈베키스탄 누쿠스 지역의 현대엔지니어링 UGCC 현장 모습


UGCC 프로젝트는 수르길(Surgil) 가스전이 있는 우스튜르트 지역에 가스·화학 플랜트를 건설하는 것으로 2011년 우즈코가스(Uz-Kor Gas)가 발주했다. 우즈코가스는 우즈베키스탄 국영 석유가스회사(지분 50%)와 한국가스공사, 롯데케미칼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 사업으로 우즈베키스탄에 처음 진출했다. 플랜트에 전기와 가스, 물, 공기(에어) 등을 공급하는 기반시설 공사를 수행해 왔다. 현장 규모는 24만3800m²이며 공사금액은 7300억원에 이른다. 화학 제품의 생산 설비 공사는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수행했다. 한국 건설업체들의 공동 작품인 셈이다.


먼저 석유화학 산업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보관하는 공 모양의 거대한 은빛 저장탱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보일러 급수 건물과 함께 수많은 파이프 라인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설물이 보이는데 가스와 스팀 등을 필요한 공정에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으로 치면 활동에 필수적인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냉각 설비인 쿨링타워 건물은 40m 높이에 길이는 100m에 이르는 우즈베키스탄 내 최대 규모 시설물이다.


현장 내 도로도 모두 현대엔지니어링이 만들었다. 가스에서 화학 원료를 최종 생산하기까지 전과정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도맡아 조성해온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UGCC 프로젝트의 준공을 앞두고 있다. 해외 플랜트 공사에서 당초 예정된 공사기간을 지키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발주처는 한국에 있는 현대엔지니어링 현장소장의 가족들을 현지에 초청해 감사의 뜻을 전할 정도였다.


하지만 준공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그야말로 악전고투였다. 2년6개월여 전에 처음 작업에 착수했을 때는 허허벌판이었다. 주변에 마을이 없다보니 직원들은 60㎞나 떨어진 곳에 허름한 방을 얻어 출퇴근해야 했다. 최초의 현장캠프는 천막이었다. 가설작업용 자재가 통관 지연으로 보세창고에서 묶여버렸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없어 땅에 구덩이를 파고 사용했다.


역시 통관 문제로 준비한 차량을 이용하지 못해 에어컨도 없는 현지 차량으로 비포장길을 오갔다고 한다. 기자의 여정을 "힘들었다"고 말한 게 송구할 정도였다. 바람이 휘몰아치면 공사는 중단됐고 겨울엔 난로를 피워 버텼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세무 공무원 출신 현지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수입 자재의 관세에 대해 은행에 보증금을 예치하는 방식으로 통관 문제를 해결했다.


공사기간 내내 최대 관건 중 하나는 조달이었다. 현지 자재 시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 대부분 한국에서 직접 들여와야 했다. 처음 들여온 중량물은 인접 국가인 카자흐스탄의 쿠릭항에서 880㎞에 달하는 거리를 거쳐 무려 42일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하 30도가 넘는 혹한 때문에 운송장비가 얼어붙는 바람에 2주가량 차량이 노상에 정차하는 일도 있었다. 이 때 참여했던 한 직원은 “너무 추우면 차가 멈춘다는 것을 알았다. 꼼짝없이 길에서 갇혀 지내야 했던 아찔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운송 직원들은 도로 주위에 있는 고압선과 가스 파이프 라인을 이용하고 비포장 도로는 보강해가면서 자재를 날랐다. 국경 철책을 제거했다가 재설치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옮긴 컨테이너 수만 4500여개에 달한다.


550t짜리 크레인 설치 작업을 완료한 날에는 자치공화국의 국회의장과 내무부 국장, 세관청장, 경찰청장 등이 현장을 방문해 성공적인 준공을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한 일도 있다.


UGCC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공사 수행은 또 다른 수주 대박으로 이어졌다. 타슈켄트에서 남서쪽으로 520㎞가량 떨어진 투르크메니스탄 국경 인근의 칸딤(Kandym) 가스전 개발 설계(2억3000만달러)와 가스생산시설(4억2000만달러) 수주에 이어 지난해에는 무려 26억6000만달러의 칸딤 가스처리시설을 수주했다. 2011년 UGCC 프로젝트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만 41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은 건설업계에서 레드오션이 돼 가는 중동의 대안 지역 중 하나다. 주요 에너지 자원인 천연가스의 매장량은 1조1000억m³, 석유는 60만t 규모에 이른다. 최근에는 노후화된 가스전의 생산량 저하 현상이 나타나 신규 가스전 개발이 주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국가적 차원에서 산업 현대화와 대외 개방 정책을 추진하며 도약을 꿈꾸고 있다는 점이 건설업계에게는 기회다. 이에 따라 석유·가스 및 화학 산업 집중 육성과 함께 대형 화력발전소 건설, 기존 발전소 확장 등이 계획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앞으로도 선진기술을 바탕으로 약속된 시간 내에 고품질의 플랜트 사업을 수행해 고객의 신뢰를 쌓고 현지 국가와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사업구조를 만들겠다”면서 “국내 중소·중견기업과의 해외 동반 진출도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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