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공격 선봉…"저격수보다 '보수 아이콘' 별명 더 좋아"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정치인 발언의 무게감은 상상 이상이다. 말 한마디에 따라 정책은 물론 정치적인 역학관계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국회의원의 입에 주목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치인이 무조건 두루뭉술한 발언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신과 정무적 판단, 발언의 함수관계는 전적으로 정치인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여기 2명의 여야 의원이 있다. 이들은 각각 말로 야당과 여당을 상대로 공격하는 저격수임을 자타가 공인한다. 그만큼 말의 강도가 세다. 때로는 막말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당 안팎의 평가는 언제나 극과 극으로 갈린다. 이들은 왜 공격수를 자처할까. 그리고 막말 논란에 대한 본인들의 입장은 무엇일까. 말로 부딪히는 2명의 국회의원을 파헤쳤다.<편집자 주>
비선실세로 알려졌던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의 이른바 '정윤회 문건'으로 정치권이 들썩였던 지난해 12월.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긴급현안질의를 앞두고 승부수를 띄웠다. 야당의 공세를 뒤집기 위해 이노근, 이장우, 김태흠, 김진태 의원 등 4명의 당내 공격수를 총동원한 것이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당시 총선 공천을 받아 당선된 초선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막는 호위무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김진태 의원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는 게 당내 평가였다. 김 의원은 이보다 앞선 2013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박 대통령의 방패막이로 나선 전력이 있었던 만큼 확실히 믿을만한 카드였다.
현안질의와 라디오방송을 통해 '현대판 마녀사냥' '새정치민주연합은 종북숙주' '온 나라가 이성을 찾아야 한다'는 야당 자극 발언은 물론, 야당 중진인 박지원 의원을 향해서는 '김정일 꽃배달원이냐'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거침없이 내뱉었다. 대통령 지키기라는 임무를 확실히 수행한 셈이다.
김 의원의 공격력은 하루 아침에 쌓인 게 아니다. 국회 입성 이후 김 의원의 '쎈(?)' 언행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는 2013년 4월25일 첫 대정부질문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소위 '종북 성향 의원'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국회의원이 되면서 대한민국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이를 부정하는 세력은 지금이라도 스스로 이 땅을 떠나길 바란다"며 야당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김 의원은 당시 대정부질문 이후 상황을 본인의 저서인 '난중일기'에서 이 같이 밝혔다.
"4월26일(대정부질문 다음날). 조용하던 내 홈피에 격려글이 1000개 이상 올라왔다. 갑자기 관심을 받게 돼 얼떨떨했다. 침묵하던 많은 국민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김 의원은 "이 연설 한번으로 자고 나니 유명해졌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 의원 발언을 뜯어보면 언제나 '종북'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17년간 공안검사직을 맡으면서 형성된 보수성향이 '종북척결'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과도하게 표출됐다는 게 당내 동료의원들의 평가다.
특히 지난 2013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구속과 지난해 통진당 해산, 올 초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 대사 습격사건은 그가 유명세를 탈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모두 종북과 연결짓기 좋은 사건들이었다.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김기종씨에 대해서는 "종북 그 자체"라고 했고 통진당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적"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페이스북에는 "종북 무리들 한 놈도 남기지 않겠습니다"라는 과격하고 직설적 표현도 게재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종북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 의원은 '종북'을 '자신의 전공과목'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저격수는 숨어서 공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인정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가 좋아하는 별명은 바로 '보수의 아이콘'이다.
발언 수위가 높다보니 막말 파문은 물론 야당 의원과의 설전도 예사다. 올 4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할 당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조선 명재상으로 추앙받는 황희 정승이 간통도 하고 온갖 부정청탁에 뇌물에 이런 일이 많았지만 세종대왕이 다 감싸고 해서 명재상을 만들었다"고 두둔해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선체 인양 문제가 거론됐을 때는 "추가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해 야당과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지난해 예산안 심사과정에서는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설전을 벌이면서 '양아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또 이보다 앞선 2013년 11월에는 박 대통령 유럽 순방길에 프랑스 교민들이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에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고 남기기도 했다. 현재 국회 윤리위에 김 의원 관련 징계안만 네 건이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정청래, 박영선(이상 새정치연합) 의원과는 더욱 악연이다. 정 의원과는 마치 전쟁처럼 트위터 논쟁을 펼쳤고 박 의원에 대해서는 자타공인 '박영선 저격수'로 불린다. 자신의 저서에는 아예 '박영선 저격수'라는 소제목과 함께 네 페이지에 걸쳐 저격수로 활동하게 된 배경을 소상히 밝혔다.
김 의원이 거센 발언을 여과없이 하는 배경은 여러가지다. 그중 하나는 소신이다. 의원실 관계자도 거침없는 발언의 배경을 설명할 때면 "의원님이 워낙 소신이 세신 분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또 보수에도 과격한 존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는 보수가 조용해 할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김 의원은 "의원들 중에는 여론이 조금만 나빠지면 꼬리내리고 도망치는 분들이 계신다. 당당하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원칙없는 정치야말로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같이 밝힌 바 있다.
"한 언론사에서 19대 국회의원 막말 발언 자료를 집계해 발표했는데, 1∼3위가 전부 야당이었다. 내가 그동안 살벌한 분위기에서 쌈닭처럼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 있었다"
거침없는 종북척결 발언과 때때로 터지는 막말을 통해 김 의원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김 의원의 캐릭터에 대해 "다른 초선 의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정치인이라면 대중의 인지도와 인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강경발언이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얘기다.
이 평론가는 "박근혜 정부 들어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종북프레임이 일관되게 이어져왔다"면서 "김 의원의 종북발언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한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거센발언으로 얻은 인기가 높을수록 비판의 목소리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몇 년 전 한 대중가수가 그를 향해 욕설을 내뱉은 적이 있다. 김 의원은 "웬만한 욕에는 이력이 나 있지만 어린 연예인까지 가세하는 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렇다고 그가 종북 발언을 멈출 수 있을까. 그의 성격상 쉽지 않다는 게 동료 의원들의 평가다.
주요 발언
"조용해, 얘기하는데. 방해하지 말고"(2013년 8월 23일 국정원 댓글의혹 진상조사특위, 야당 일부 의원들이 말을 가로막자)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김정은, 김정일 조화 배달하는 심부름꾼이냐"(2014년 12월15일 긴급현안질문,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방북 관련)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 버릇을 고치기 위해선 밥을 굶겨야 한다"(2014년 11월 27일 예결특위 예산심사소위, 일부 의원들이 '야당 참여를 위해 예산안 심사를 미루자'고 언급한 직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임모씨와 관계가 틀어졌는데, 그 이유는 임모씨가 채 전 총장과 모 여성정치인 사이에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했기 때문"(2013년 10월1일 국회 긴급현안질문, 채 전 총장이 여성정치인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제보를 받았다며)
"세월호 선체 인양하지 맙시다. 사람만 또 다칩니다"(2015년 4월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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