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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詩人, 어쩌다 商人으로 죽었나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1초

천재詩人, 어쩌다 商人으로 죽었나 아르튀르 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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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넘버3'에서 故 박광정이 연기한 3류 시인의 이름은 '랭보'였다. 물론 "람보가 아니라 랭보"라고 자신을 소개해야 할 만큼 희화화된 캐릭터였지만 그런 이름을 지은 데는 삶의 방황 속에서도 불멸의 작품을 남긴 진짜 시인이 되고 싶은 바람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시인'을 떠올리게 되는 랭보가 남긴 시는 그의 나이 15세에서 20세 사이에 쓴 것이 전부였다. 그는 37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문학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10일은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세상을 떠난 지 124년이 되는 날이다. 37세로 사망할 때 그는 시인이라기보다 상인이었다고 한다. 20세 이후에는 절필하고 유럽 여러 나라와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등을 떠돌며 용병 생활을 하고 커피 교역과 무기 밀매 등을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혹사하다 오른쪽 무릎의 관절염이 악화돼 프랑스 마르세유의 병원에서 숨졌다.

천재로 평가 받던 그가 왜 스무 살의 나이에 문학을 떠나 죽을 때까지 그 재능을 봉인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순탄하지 않았던 그의 10대를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따름이다. 랭보는 16세인 1870년 샤를빌중학교에서 만난 수사학 교사 이장바르에게 문학적인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 중에도 세 번이나 가출을 했던 그는 자신의 문학적 각성에 대해 이장바르와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견자의 편지'다.


견자의 편지를 받은 선배 시인 중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인 폴 베를렌이 있었다. 파리에서 만난 랭보와 10살 위의 베를렌은 사랑에 빠져 함께 벨기에, 영국 등을 방랑했고 1873년 브뤼셀에서 만취한 베를렌이 랭보에게 총을 발사할 때까지 2년 동안 부부처럼 지냈다고 한다. 베를렌이 쏜 총에 손목을 맞은 랭보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베를렌은 2년 동안 감옥에 있어야 했다. 베를렌을 떠난 랭보는 대표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출간하고 이후 1874년 '일뤼미나시옹'을 선보인 후 시작 활동을 멈춘다.

이후 감옥에서 나온 베를렌은 가톨릭에 귀의하고 참회의 마음으로 시집 '예지'를 썼다. 베를렌은 랭보에게도 신앙을 권했지만 그는 거절했다고 한다. 베를렌은 랭보를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 별명대로 랭보는 시작은 멈췄지만 죽을 때까지 방랑은 멈추지 않았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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