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전주곡집', '화려한 변주곡, 작품12', '자장가, 작품67', '뱃노래, 작품60' 등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예민하다'는 이미지, 사실 좀 억울해요. 알고 보면 저만큼 사람 좋아하고 잘 기대고 베푸는 사람도 없는데. 물론 흰머리가 날 정도로 나이를 먹으면서 유해진 건 있겠죠.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예전 같았으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만큼 방방 뛰었을 일도 지금은 잘 넘긴다고. 그래도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때 더 확신에 차고 평정심 있었어요."
피아니스트 임동혁(31) 씨가 지난 3일 서울 이태원 스트라디움에서 열린 새 앨범 '쇼팽:전주곡집' 발매 기자회견에 참석해 '서른을 넘기니 까칠하던 20대 때보다 훨씬 여유 있어 보인다'는 말에 웃으며 '억울함'을 내비쳤다.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많은 풍문을 낳아온 연주자다. 2003년, 열아홉 살이던 그는 심사에 불복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 수상을 거부했다. 쇼팽과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대회였다. 사상 초유의 사태였기에 그에 대해 '거만' 혹은 '패기'라는 극단적 평가가 나왔다.
2005년, 임동혁 씨는 쇼팽 콩쿠르에 참가했다. 최근 조성진 씨가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그 대회다. 임 씨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의 1악장을 치고는 연주를 멈췄다. '악기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피아노를 열어보니 실제로 조율 기구가 들어 있었다. 그는 피아노 손질이 끝난 다음 연주를 이어나갔다. 이런 해프닝 속에서도 형과 함께 공동 3위를 했다. 당시까지 한국인이 기록한 최고성적이었다.
임동혁 씨는 "우연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지만 당시 그가 받아든 성적표에 대해 '주최 측이 견제한 결과 아니냐'는 의혹이 따라붙었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내 나이에 나만큼 많은 일 겪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잦은 구설에 '까칠하고 예민하다'는 이미지가 쌓여갔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그가 다시 쇼팽으로 돌아왔다. '24개의 전주곡, 작품28'과 '화려한 변주곡, 작품12', '자장가, 작품67'과 함께 난곡으로 꼽히는 '뱃노래, 작품60'을 한 앨범에 담았다. 2008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낸 이후 7년만의 단독 앨범이다. 임동혁 씨는 "오랜만의 작품이라 가장 잘하는 걸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임 씨는 "프렐류드(Prelude, 전주곡) 전곡을 연주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바카롤(Barcarolle, 뱃노래)까지 하면 '정말 내가 고생 많이 하겠구나. 고생 많이 하면 의미 있는 앨범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전주곡에 대해 "너무나도 많은 얼굴을 가진 곡인데 장조와 단조로 이루어져 빨리 빨리 기분을 바꿔 연주해야 하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떠올렸다. 이어 "에튀드(Etude, 연습곡) 못지않게 기술적인 문제들을 많이 앓았고 감정이 치우치지 않게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는 차라리 우는 게 낫다. 이번 앨범 수록곡들이 누군가를 울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조성진 씨가 오는 6일 발매할 앨범에도 '24개의 전주곡'이 실린다. 두 사람은 찜질방을 같이 다닐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임 씨는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녹음을 마친 뒤 프랑스 파리에서 조 씨와 함께 미완성 앨범을 듣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성진과 임동혁의 전주곡은 어떻게 다르냐'는 물음에 "비교는 연주자의 몫이 아니다. 듣는 이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임 씨는 "성진이는 피아니스트가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적절하게 잘 갖추고 있는 연주자"라며 "조성진과 (최근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문지영 중에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나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고 했다.
임 씨는 오는 12월부터 쇼팽 전주곡 프로그램으로 전국 투어를 시작한다. 서울 공연은 내년 1월2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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