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태가 터진 뒤 자주 들은 이야기는 “포르쉐, 벤틀리가 폭스바겐 계열사인 줄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골프, 비틀 같은 서민들이 타는 차를 만드는 폭스바겐이 ‘회장님 차’인 컨티넨탈 시리즈를 만드는 벤틀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폭스바겐의 모태가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포르쉐라는 사실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한국에서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라는 법인 아래 묶여 있는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계열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은 모양이다. ‘디젤 게이트’가 터진 지난달 국내 수입차 시장 판매량을 보면 폭스바겐은 8월에 비해 7.8% 감소했지만 아우디는 20% 이상 증가했다. 9월 한 달 동안 2796대를 판매해 아우디의 월간 판매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아자동차 스포티지와 현대자동차 투싼이 같은 엔진을 공유하는 것처럼 폭스바겐과 아우디 역시 같은 차급에서는 같은 엔진을 사용한다.
디젤게이트로 폭스바겐이 곧 ‘폭망’할 것 이라는 예상이 줄을 잇고 있지만 그럴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폭스바겐은 치명타를 입겠지만 폭스바겐그룹에는 그 외에도 11개의 브랜드가 더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1991년 스페인의 세아트와 체코의 스코다를 인수하면서 멀티 브랜드 전략을 도입했다. 1998년부터 부가티와 람보르기니, 벤틀리를 잇달아 인수했다. 소형부터 럭셔리 세단, 스포츠카, 화물차를 아우르는 자동차 회사가 됐다.
자동차 기자를 몇 년째 하고 있지만 폭스바겐의 12개 브랜드를 모두 대라고 하면 한 번에 읊을 수가 없다. 스코다가 폭스바겐그룹 계열사라는 걸 체코 국민들이야 대부분 알겠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 중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아트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폭스바겐이 세계 자동차 시장 1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견인차 역할을 한 멀티브랜드 전략은 위기에서 폭스바겐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폭스바겐의 전략은 현대기아자동차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현대기아차는 그 동안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진출하지 않은 지역을 먼저 공략해 사세를 확장했다. 1998년 인도를 시작으로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 브릭스(BRIC's) 지역에 모두 완성차 공장을 건설해 현지 생산 체제를 갖췄다. 신흥 시장을 발판으로 현대기아차는 세계 5위 자동차 회사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공간을 넓히는 전략은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신흥국 경제가 동반 불황에 빠지면서 과거 성장의 엔진 역할을 했던 브릭스 투자가 지금은 현대기아차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브라질 등에서 현대기아차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브릭스처럼 폭풍성장을 할 수 있는 신흥시장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와 기아차라는 2개의 브랜드로 시장을 확장하는 게 쉽지 않다면 폭스바겐처럼 해외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성장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 타타자동차가 볼보와 랜드로버를, 중국 지리자동차가 볼보를 인수해 재미를 보고 있다. 현대기아차도 색깔이 전혀 다른 해외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장착하면 어떨까.
현대기아차가 인수한 해외 자동차 회사는 해외 시장은 물론이고 국내 시장에서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수입차 회사의 공세를 막을 카드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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