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나라의 국가연구개발비 투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1위이며 절대액수 면에서도 전 세계 6위 수준이다. 그간 이러한 국가적인 차원의 투자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의 경쟁력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의 이면에는 이에 따르는 부작용도 같이 부각되고 있다. 연구비 횡령 등 도덕적 해이 현상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으며 연구비 확보를 위한 생계형 연구가 상당 부분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과연 국가연구비가 투자 대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고 실용적인 연구 결과를 얻었는지 짚어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국가연구비 운영체계의 가장 큰 폐해는 우리나라 국가연구비의 연구비 선정 평가와 중간 관리 그리고 종료 시 사후 평가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있다고 진단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학연, 지연 등 여러 인맥으로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가에 관해서 지나치게 투명성과 객관성을 강조한다. 연구과제의 평가 과정도 그러하다. 지나치게 투명성과 객관성을 강조하다 보니 전문성과 주관성이 떨어지게 된다. 특히 대형 과제인 경우 통상 수십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게 되는데 잠재적 이해관계자를 모두 배제하다 보면 결국 전문성이 떨어지는 평가자가 정량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투명성과 객관성을 강조하다 보니 그에 따른 부작용이 필히 생기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대학에 지원되는 연구비 평가의 경우, 국제 저명학술지 게재 건수 등 정량 평가에 치우치게 되고 기업에 지원되는 사업은 그 과제의 혁신성, 실용성보다는 그 회사의 규모와 연구원의 인적 구성 등이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가 된다. 중간 평가와 사후 관리 또한 형식적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우리나라 정서상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제를 중간에 탈락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특히 사후 평가에 관해서는 이미 종료된 과제를 아주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실패 판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연구비를 관리하는 기관에서 종료 과제를 실패 과제로 판정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고 평가에 참여하는 평가자 또한 동료 연구자에게 부정적인 결과로 판정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설령 과제의 결과가 불량하더라도 성실 실패로 판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선정 평가와 선정 후 과제의 관리가 이원화돼 있어서 체계적인 과제 관리가 어렵다. 선정 평가위원들은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과제를 객관적으로 정량적인 잣대로 상대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책임지지 않는 형태의 평가다. 이러다 보니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될 수도 없다. 즉 선정 평가, 중간 평가, 사후 관리가 따로 이뤄지다 보니 서로의 책임 한계가 모호해지고 그것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주체도 모호하다. 따라서 연구 결과물이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동안 국가연구지원사업의 형태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정권교체에 따른 정책의 변화를 겪어왔다. 박근혜정부가 시작되면서 창조경제가 화두가 됐고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형태의 국가 연구개발 지원 사업이 시작됐다. 필자는 현재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의 신산업창조프로젝트 기술사업화 전문가단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동 사업은 벤처 최고경영자(CEO), 벤처 캐피털, 변리사, 교수 등 해당 분야 전문가로 전문 멘토(전문가단)를 구성해 정부의 R&D 사업의 결과물인 우수한 기초ㆍ원천 R&D 성과 중에서 선정된 사업단이 보유한 기술의 사업화를 위해 선정부터 중간 관리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밀착해 관리지원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파격적인 연구비 관리 형태에 얼마나 자율성을 보장해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제는 매우 만족하며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책임과 권한을 동시 부여하게 되면 거기에 걸맞은 권한 행사와 이에 따르는 의무를 지게 된다. 국가연구비 관리 과업을 수행하면서 책임자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효율적인 국가연구비 집행 체계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국가 R&D 투자가 기술사업화라는 좋은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김선일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 기술사업화전문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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