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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전시포커스] '나이 듦'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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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개인전·조덕현 협업전

[오진희의 전시포커스] '나이 듦'에 대하여 이상원 作, '동해인' 시리즈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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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전시포커스] '나이 듦'에 대하여 이상원 作, '동해인' 시리즈 작품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죽는다. '노년'이라는 글자를 떠올리면 그려지는 것들. 거칠고 주름진 얼굴, 마음 같이 움직여지지 않는 몸, 하나 둘씩 동년배들이 세상을 하직할 때 밀려드는 고독감, 인생을 돌아보며 드는 회환과 후회 아니면 보람도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미래의 노년을 생각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듯하다. 막상 닥쳐야 고민하고 체감하는 우리의 한계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노인의 족적이 갖는 무게감이 가볍지 않다는 의미다.


노년을 생각하게 하는 두 개의 전시가 있다. 하나는 원로화가가 동해안 어촌과 인도 바라나시의 노인들을 그린 대형 인물화들이다. 다른 하나는 동명이인의 화가와 영화배우가 협업해 가상의 독거노인이 기억하는 인생의 흔적과 생활을 그림과 영상, 설치로 재현했다.

[오진희의 전시포커스] '나이 듦'에 대하여 이상원 화백


◆춘천서 만나는 '주름진 동해인' = 슬프거나, 무덤덤하거나, 피곤한 기색. 우울하고 황망한 얼굴. 주름이 깊게 파이고 검버섯이 피어오른 얼굴들은 이상원 화백(80)의 인물화 속 주인공들이다. 평생 바닷바람을 맞으며 고기를 잡고 이를 장에 나가 팔아온 동해안 어촌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표정에는 고단한 바닷가의 삶과 꿈보다 먹고사는 일이 절실했던 질곡진 인생이 배어있다. 평정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강퍅하기도 한 얼굴빛에서 강인함과 꼿꼿함이 느껴진다.


지난 8일 저녁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이상원 화백을 만났다. 1935년생인 그 역시 작품 속 인물들과 동시대를 살아왔다. 야구 모자를 쓴, 흰 턱수염이 인상적이었던 노(老) 화백 역시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큰 목소리로 질문을 해야 했다. 그는 이런 노인 인물화를 나이 예순둘에 시작했다고 했다.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노인들에 대한 시선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동해안을 비롯해 전국의 지방과 도시를 여행하며 나이 든 이들을 현장에서 바로 스케치하고 이를 장지에 옮긴 후 유화물감과 먹을 칠해 나가는 방식으로 수많은 인물화를 그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최근까지 인도 바라나시에서 만난 노인들을 소재로 작업했다. 모델들과 친해지기 위해 술과 이야기도 숱하게 나눴다고 했다.


'왜 노인들만 화폭에 담았냐'고 묻는 질문에 이 화백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인물들을 만나보면 그 중 내 마음속에 깊이 파고드는 얼굴들이 있다. 삶의 진정성을 일깨워주는 얼굴들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주름지고 못생긴 노인들, 특히 노파들의 얼굴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특별히 캔버스가 아닌 삼합장지를 쓰는 이유를 두고, 그는 "닥종이로 만드는 장지는 질기고 두껍다. 천년 가까이 훼손되지 않는다. 캔버스는 200년도 못 간다"며 "꽤 값이 나가기 때문에 그림을 아주 신중하게 그려야 한다"고 했다.


춘천에서 태어난 이 화백은 젊은 시절 상경해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까지 극장 간판 그림과 상업초상화를 제작했다. 이때 그린 초상화 인물로는 미8군의 군인들, 안중근 의사의 영정, 정치인들, 중동의 국왕 등이 있다. 국내외에서 초상화 의뢰가 빗발치며 경제적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던 1970년대 중반, 이 화백은 돌연 초상화 주문을 고사했다. 이때부터 순수미술 작업을 위해 새롭게 출발했다. 그렇게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작한 그림이 바닷가의 정경, 눈밭에 흔적으로 남은 자동차바퀴자국, 폐허의 이미지, 수변에 쌓인 폐기물 등 오래되고 소멸의 시간에 진입한 물상들을 대상으로 한 정물화였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이처럼 노인 인물화를 그려 나갔다.


노인 인물화 대작(大作)들을 이 화백의 개인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춘천 화악산 중턱에 지난 10월 문을 연 '이상원미술관'에서다. 전시는 12일부터 12월 6일까지. 033-255-9001.


[오진희의 전시포커스] '나이 듦'에 대하여 '이 생명이 다하도록', 한지에 연필, 2015년. 조덕현 作


[오진희의 전시포커스] '나이 듦'에 대하여 작가 조덕현과 배우 조덕현(왼쪽부터)


◆동명이인 화가ㆍ배우 조덕현이 재현한 '독거노인'의 삶 = 서울에서도 노인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기획이 독특하다. 미술과 영화와 문학이 만났다. 중견작가 조덕현(58)과 동명이인 배우 조덕현(48) 그리고 소설가 김기창(37)이 협업해 가상의 독거노인 '조덕현'의 인생과 기억, 현재의 삶을 설치와 그림, 영상에 담았다. 김기창이 설정한 가상의 인물을 배우 조덕현이 연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 조덕현이 사진과 그림, 영상, 설치 작업을 진행했다.


전시의 주인공인 '조덕현'은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영화계에서 활동한 배우로, 현실과 타협하고 시류에 편승하며 결국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아간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오히려 굴절된 한국 근현대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시장은 현재 독거노인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누워 있는 인물 '조덕현'이 과거 영화배우 시절을 왜곡된 기억과 망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그림으로 채워졌다. 화가 조덕현은 배우 조덕현을 '올드 상하이'(1930년작), '카사블랑카'(1942년), '청춘쌍곡선'(1956년), '이 생명이 다하도록'(1960년) 등 옛날 영화 장면과 포스터 속 인물들에 합성했다. 그림들은 모두 한지에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것들이다. 중간 중간 '조덕현'의 현재를 비추는 영상과 그가 사는 집을 생생하게 묘사한 설치작품도 비치돼 있다. 영상 역시 배우 조덕현이 연기했다.


작가 조덕현은 "노년을 맞이한 베이비붐 세대에게 기억은 삶의 본질이다. 개인적으로 주변에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을 여럿 보면서 쓸쓸했다. 특히 독거노인들은 집에서 온종일 옛날을 회상하면서 기억조차 변질되는데, 이것이 망상으로 확대되기도 한다"며 "누구나 겪게 되는 죽음 앞의 우리네 인생"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꿈'인 이유다. 이번 작업을 위해 작가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배우 조덕현을 수소문해 지난해부터 만나왔다. 이 전시를 위한 물밑작업이기도 했다. 배우는 "작업의 소재나 주제가 나와 너무 닮았다고 느꼈다. 열심히 배우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주인공인 '조덕현'처럼 살지 말자는 웃픈 다짐도 하게 됐다"며 "사실 많은 배우들이 이렇게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외롭고 가난하게 말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했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02-2020-2050.

[오진희의 전시포커스] '나이 듦'에 대하여 독거노인 '조덕현'의 방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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